日 천만 ‘국보’ 이상일 감독 내한…“영화 속 혈통-외부인 요소, 내 태생적 요소와 겹쳐”

임가을 기자 / 기사승인 : 2025-11-14 09:55:03

[SWTV 스포츠W 임가을 기자] 일본 영화사에 족적을 남긴 재일 한국인 감독 이상일이 ‘국보’와 함께 한국을 찾았다. 

 

지난 14일 오후 서울 용산구 소재의 CGV 용산아이파크몰에서 영화 ‘국보’의 내한 기자간담회가 열렸다. 자리에는 연출을 맡은 이상일 감독이 참석했다.

‘국보’는 국보의 경지에 오르기 위해 서로를 뛰어넘어야만 했던 두 남자의 일생일대의 이야기를 그린 영화로, 요시다 슈이치의 동명 소설을 원작으로 한다.

 

 

▲ 이상일 감독 [사진=연합뉴스]

 

이번 영화는 제78회 칸영화제 감독주간 공식 출품에 이어 제98회 미국 아카데미 시상식 일본 대표 출품작으로 선정되었으며, 국내에서는 제30회 부산국제영화제를 통해 첫 선을 보였다.

특히 ‘국보’는 일본 실사 영화 역사상 두 번째로 누적 관객 1천만 명을 돌파했고, 무려 22년 만에 나온 흥행수입 100억 엔 돌파 일본 실사 영화로도 이름을 올렸다. 역대 일본 실사 영화 흥행 기록 중 1위를 기록하고 있는 작품과는 약 5억 엔 내외의 차이로 간극이 좁혀지고 있어 화제를 모으고 있다.

이상일 감독은 “저 스스로도 굉장히 놀라운 결과를 내고 있다고 생각한다. 실사 영화 흥행 1위를 목전에 두고 있고, 일본에서 계속 상영이 진행되고 있다. 머지않아 높은 결과를 보고드리는 게 가능할 수도 있을 것 같다”고 희망적인 전망을 말했다.

이어 그는 “일본에서 개봉했을 때 5주 차까지 관객 수가 증가하는 걸 볼 수 있었고, 작품에 대한 열기도 실감할 수 있었다. 젊은 층들은 SNS를 해서 알기 쉽게 정보를 많이 전달해 주고 있었고, 연세가 높으신 분들은 입에서 입으로 이 영화에 대해 많은 열정이 전달되는 걸 느낄 수 있었다. 놀라고 있고, 기쁘게 생각하고 있다”며 현지 반응을 전하기도 했다.

이 감독은 재일 한국인 3세로, 일본에서 나고 자란 한국인이다. 일본 전통 예능인 가부키를 소재로 한 것에 대해 그는 “확실히 제 뿌리는 한국에 있고 한국인이긴 하지만, 일본에서 나고 자라 일본 문화의 영향을 많이 받았다. 따라서 제가 지닌 가부키에 대한 거리감은 일반적인 일본인과 크게 차이가 없었다”고 말했다.

 

▲ 사진=미디어캐슬

 

극 중 주인공 ‘키쿠오’는 가부키에서 여성 역할을 하는 남성 배우, 즉 ‘온나가타’로 활약한다. 이 감독이 이들에게 관심을 두기 시작한 건 ‘국보’보다 이전으로, 전작 ‘악인’이 계기가 되었다고 말했다.

이 감독은 “‘악인’이라는 영화를 찍은 후 처음으로 ‘온나가타’에 대해 관심을 갖게 되었고, 그들을 모델로 영화를 만들고 싶다고 생각하게 됐다. 아름답게 보이면서도 관점에 따라 남성이 여성을 연기한다는 게 그로테스크하게 보일 수도 있는데, 5~60년 동안 예술을 위해 자신을 갈고닦은 그들만이 갖고 있는 독특함과 신비성이 있었다. 그 실루엣이 어떻게 나오는 건지 알아내고 싶다는 생각이 있었다”고 말했다.

일본의 대표적인 전통 예술인 가부키를 그리고 있지만, 이 감독은 가부키 자체를 그리기보다는 가부키를 하는 배우들과 그들을 지지하고 보살펴주는 가족들에 대한 휴먼 드라마에 무게를 두고 영화를 그려내려 했다고 말하기도 했다.

이 감독은 “가부키뿐만 아니라 연극, 영화 등 다양한 종류의 예술에 인생을 걸고 자신의 실력을 갈고닦는 배우들은 굉장한 빛을 받는 것처럼 보이지만, 거기에 수반되는 그림자도 넓고 짙다는 걸 알고 있기 때문에 그 그림자를 등에 지고 빛나는 존재들과 예술을 통해 살아가는 사람들의 삶의 방식에 대한 것들은 어디에서든 보편적으로 흥미를 가질 수 있는 소재일 것이라고 믿고 있다”고 설명했다. 

 

따라서 극 중 자주 등장하는 가부키 무대를 담을 때도 가부키라는 예술을 소개하는 것이 아닌, 그 예술을 행하는 인물에 초점을 맞췄다.

이 감독은 “무대 위에 등장하는 배우들의 드라마를 보여주고 싶었고, 그 배우들이 무대 위에서 무엇을 보는지, 무대 위에서는 어떤 풍경이 보이는지 보여주고 싶었다”며, “단순히 배우로서 연기하는 모습을 담으려고 한 게 아니라 그들이 사생활에서 품고있는 감정이나 평소에 느끼는 중압감, 그리고 무대에 오른 기쁨 등 다양한 내면을 구체적으로 보여주고 싶어서 클로즈업을 많이 사용했다”고 연출의 의도를 짚기도 했다.

 

▲ 사진=미디어캐슬

 

현장에서 이 감독이 인상 깊게 느낀 장면도 이와 결이 같다. 그는 “극 중 [소네자키 동반자살] 작품에서 요시자와 료가 오하츠 역을 맡아 연기할 때 ‘죽을 각오를 들려주시와요’라는 명대사를 한다. 키쿠오가 배우로서 내면에 안고 있는 감정을 드러내고 있는 순간을 클로즈업으로 제대로 잘 찍어내었을 때 제가 이 영화에서 관객분들에게 무엇을 보여주고 싶었는지, 내가 원했던 것이 어떤 것이었는지를 확실히 알 수 있었다”고 전했다.

가부키를 제대로 수행하면서도 가부키 배우가 지닌 감정을 우선시해야 한다는 건 어려운 과제를 짊어지게 된 배우들에게도 중요한 부분이었다.

이 감독은 “가부키 전문 배우가 아닌 영화 배우들이 가부키를 해야 한다는 건 정말 높은 허들이고 어려운 일이었다. 이들은 영화 속에서 가부키 배우로서 리얼한 존재감을 표현하지 못한다면 이 영화가 붕괴한다는 것을 잘 알고 있었다”면서도, “배우들은 가부키 자체를 잘 연기하기 위해 1년 이상 준비했지만, 저는 가부키만 표현하고 잘하는 것 만으로는 부족하다고 말했다. 내면에 있는 것들을 담아내지 않으면 안 된다고 생각했고, 이를 끌어내지 못한다면 영화의 의미 자체가 희박해진다는 이야기를 전달했다”고 말했다.

영화가 공개되고 화제가 된 건 주연을 맡은 요시자와 료의 열연이었다. 파란만장한 배우의 삶을 아름답고도 치열하게 연기해 낸 요시자와 료는 이번 ‘국보’를 통해 그의 배우 인생에 빼놓을 수 없을 만한 작품을 남겼다. 이 감독은 “이 영화를 기획한 건 거의 5~6년 전인데, 이미 그 시기부터 주인공은 요시자와 료가 아니면 할 수 없다고 생각했다”고 밝혔다.

이어 그는 “연기가 뛰어난 것은 물론이고, 극 중 키코우와 마찬가지로 몸과 마음 모두 파도 파도 끝이 보이지 않는 투명하고도 텅 비어 있는 느낌이 들었다. 외형적으로도 굉장히 아름다워서 연기하지 않고 가만히 있을 때는 어느 방 한구석에 놓여 있는 도자기 인형 같은 느낌인데, 연기하기 시작하면 인형이 살아서 인간이 되는 특수한 분위기를 갖고 있었다. 이건 요시자와 료가 아니면 안 된다고 생각해서 일찍부터 캐스팅했다”고 호평하기도 했다.

 

▲ 사진=연합뉴스

앞서 이 감독은 애플TV+의 [파친코 시즌 2]를 연출하며 K-콘텐츠와 인연을 맺기도 했다. 그는 “당시 한국 배우들을 많이 만나게 되었다. 처음에 윤여정 배우가 너무 무서웠다. 근데 함께 일하다 보니까 서로 신뢰 관계가 되어서 굉장히 기뻤다. 김민하, 이민호 배우도 기억에 남는다. 처음으로 해외와 함께 작업해 본 것이었는데 이들 덕에 잘 해낼 수 있었다고 생각하며, 신선하고 좋은 기억으로 남아있다. 한국 배우들은 사고 방식이 확고하고, 연기 이론도 확실하다. 기초가 탄탄하다고 느꼈다. 그래서 커뮤니케이션이 원활히 잘 되었다”고 회상했다.

이어 어떤 K-콘텐츠를 인상 깊게 봤는지에 관한 질문에는 “유랑의 달’이라는 작품을 홍경표 촬영 감독이랑 함께 작업했었는데 그분이 작업하신 ‘하얼빈’을 극장에 가서 봤다. 작품의 영상이 가진 힘을 너무나 느끼고 감명받았다. 또 넷플릭스에서 ‘승부’라는 작품을 보고 이병헌 배우의 훌륭함을 많이 느꼈다”고 답했다.

끝으로 이 감독은 곧 영화를 만나게 될 한국 관객들에게 인사를 남겼다. 그는 “저 스스로가 한국인인 부분이 이 영화와 직접적으로 관련있다고 얘기할 수는 없지만, 혈통이라는 것과 외부에서 온 인간이라는 구조는 제가 태어나면서부터 갖고 있는 요소와 겹쳐지는 부분이 있다고 생각하고 있다”며, “그 어떤 나라보다도 한국 관객분들이 이러한 부분에 대해 밀접하게 잘 느껴주신다면 기쁠 것 같다. 무엇보다 영화를 즐겨 주시는 게 최고라고 생각한다”고 말했다.

한편 ‘국보’는 오는 19일 극장에서 개봉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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