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터뷰] 김선영 “이기적인 ‘렘피카’? 타당성 있게 연기하는 게 배우의 몫이죠”

임가을 기자 / 기사승인 : 2026-04-18 06:30:4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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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WTV 스포츠W 임가을 기자] “타마라가 이전에 했던 말이 거짓말처럼 느껴질 수도 있겠지만, 그 말을 했던 순간만큼은 진심이었을 거예요. 어떻게 보면 그 모순 자체가 이 작품이 이야기하고자 하는 것이죠.”


뮤지컬 ‘렘피카’에서 ‘타마라 드 렘피카’ 역을 맡은 김선영은 최근 서울 종로구 삼청동 소재의 모 카페에서 진행된 라운드 인터뷰에서 작품에 관한 이야기를 나눴다.

 

▲ 사진=PL엔터테인먼트


‘렘피카’는 20세기 초 격변기에서 살아남은 여류 화가 ‘타마라 드 렘피카’의 삶과 예술을 그린 뮤지컬 작품이다. 지난 2024년 브로드웨이에서 초연을 올린 작품은 올해 한국에서 아시아 최초 라이선스 공연을 선보인다.

러시아 혁명, 1차 세계대전을 거치며 유럽을 중심으로 활동한 타마라 드 렘피카는 도형, 원뿔, 원통 등을 사용한 아르데코 양식을 활용해 ‘아르데코의 여왕’이라는 수식어를 얻었고, ‘녹색 부가티를 탄 타마라’, ‘두 친구’ 등의 대표작을 남겼다.

인물을 찾아가는 여정이 쉽지만은 않았다는 김선영은 “실존 인물이라 그분의 인생을 들여다봐야 할 것 같아서 자료들을 찾아보았다”며, “원체 독특한 인물이고 대단한 영웅담을 가졌거나 인류에 이바지한 인물도 아니어서 어떻게 이 사람을 표현할지에 대해 생각했다”고 밝혔다.

화려한 인생을 살다 간 시대의 아이콘처럼 보이는 타마라에게 이입한 부분은 의외로 평범함에 있었다. 김선영은 “평범했던 사람이 여러 다른 상황에 처해 생존을 위해 몸부림치는 이야기라고 생각한다”면서, “저 역시 무대에서 보편적이지 않은 삶을 살고 있지만, 인물을 연기하는 순간만 특별해지고 이외에는 지극히 평범하다고 느낀다”고 말했다.

“만약 타마라가 날 때부터 화려한 사람이었을 거라고 해석했다면 그다지 매력을 느낄 것 같지 않아요. 평범하다고 느끼는 사람이 자기도 모르게 무언가를 해내고 보여줬을 때 누군가에게 비범하게 보인다면 비로소 특별해지는 것이고, 저는 그 특별함을 타마라에게서 찾았죠.”

 

▲ 사진=놀유니버스


이처럼 타마라는 예술만을 추구한 위대한 화가로 그려지지는 않는다. 그에게 있어서 예술보다도 더 밀접하게 맞닿아있는 개념은 바로 ‘생존’이었다. 말 그대로 살아남기 위해 그림을 그리기 시작한 타마라에 관해 김선영은 ‘복잡한 사람’이라고 정의했다.

“순수한 예술을 향한 마음만 있는 게 아니라 복합적으로 어떻게 살아야 할 것인가를 고민하며 그림을 그리고 팔았어요. 자신을 이미지화, 브랜드화하는 모습을 보고 단순히 그림을 그리기만 한 화가는 아니었겠다는 생각이 들었죠. 그 시대에 이런 삶을 어떻게 살 수 있었나 의문이 들 만큼 자유롭지만 자유롭지 못했던 사람이라고 생각해요.”

작품의 핵심 중 하나인 타마라와 라파엘라의 관계도 단순하지 않았다. 김선영은 라파엘라에 대해 “지위와 상황은 다르지만, 누구보다 내 생각과 마음을 읽어주고 공감할 수 있는 존재”라고 말하며 그와의 사랑을 간단히 욕망의 산물로 표현하지 않았다.

“타마라는 본능적으로 생존하려고 하는 사람이에요. 성공한 후에도 내가 사는 파리까지 몰락하면 어떻게 살아야 하나 고민하죠. 그래서 라파엘라를 봤을 때 여성으로서의 욕망만을 느낀다기보다는 그의 인생을 자기에게 투영하고, 동시에 예술을 향한 갈망이 라파엘라를 통해 깨어나서 돈과 유명세까지 연결되는 과정이라 생각했어요.”

 

주인공을 위인으로 바라보는 작품이 아닌 만큼, 타마라는 모순적이고 보편적인 윤리관에서 벗어나는 행동을 보이기도 한다. 뮤즈 라파엘라와 남편을 모두 놓치지 않으려 하고, 마땅히 보살펴야 할 딸을 소홀히 하는 모습이 대표적인 예다. 이에 김선영은 “이기적인 모습으로 비춰진다 하더라도 그것조차도 타당성을 갖게끔 연기하는 게 배우의 몫”이라고 말했다.

“매 장면에 충실해서 연기하려 해요. 순간순간 내뱉는 말과 노래에 담긴 정서에 얼마나 충실할 수 있을지 고민하죠. 후반부에 가면 타마라가 이전에 했던 말이 거짓말처럼 느껴질 수도 있겠지만, 그 말을 했던 순간만큼은 진심이었을 거예요. 어떻게 보면 그런 모순 자체가 이 작품이 이야기하고자 하는 것이고, 그걸 통해 관객들이 우리가 살아가는 모습 역시 같다는 걸 공감할 수 있겠다고 생각해요.”

 

▲ 사진=놀유니버스

 

쉽사리 판단할 수 없는 인생을 산 인물인 만큼 김선영의 연기에도 복잡함이 담겼다. 그는 “관객들에게 와닿지 않더라도 복잡함을 갖고 연기해야 관객들에게도 입체적인 감상을 줄 수 있을거라 생각했다”며, “단순히 결론 짓게 만들기보다는 의구심을 갖게 하는 것이 이 작품과 어울린다고 생각했다. 관객분들이 머리가 아팠다면 성공한 게 아닌가 싶다”고 말하며 웃어보였다.

음악적으로도 ‘렘피카’를 표현하기는 쉽지 않았다. 타마라뿐만 아니라 모든 배역이 쉽지 않았다고 말한 김선영은 작품 특유의 추상적인 가사에 관해 이야기하기도 했다.

“타마라는 화가로서 이야기하는 장면이 많아요. 서사적으로 연결되는 넘버여야 하는데 가사가 갑자기 ‘평면, 선, 형태’나 ‘뼈, 살’ 같은 단어로 나오니까 몰입을 하고 있어도 너무 힘들죠. 연습 때보다는 익숙해졌지만, 타마라 배우들이 지금까지도 계속 힘들어하는 부분이에요. 어떻게 보면 이런 가사가 일상을 살다가도 무언가 놓쳤거나 표현해야 하는 것들이 있으면 순간적으로 몰입해 그림으로 그려내는 타마라의 예술 세계인 것 같아요.”

배역의 난도 외에도 김선영이 겪은 부상도 큰 고난을 안겨주었다. 집에서 크게 넘어져 오른쪽 팔꿈치가 두 동강이 난 그의 팔에는 선명한 수술 자국이 나 있었다. 그는 “넘어져 있는 순간에도 ‘렘피카’를 못할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다치기 이틀 전에 프로필 촬영을 안 해놨으면 공연을 못할 뻔했다”고 당시를 회상했다.

“통깁스를 푼 이틀째에 팔이 펴지지도 않는 상태로 상견례에 나갔어요. 다행히 타마라가 춤을 추는 것도 없고 붓을 드는 정도의 움직임 정도만 있어서 가능하리라 믿고 오늘까지 왔죠. 타마라가 생존을 위해 여정을 이어나간 것처럼, 저 또한 이 작품이 저를 기다리고 있지 않았다면 재활이 더 오래 걸렸을 것 같아요. 작품이 끝날 때쯤 제 팔도 완벽해지리라 믿어요.”

 

▲ 사진=PL엔터테인먼트

부상으로 인한 불안은 피나는 노력으로 가라앉혔다. 그는 함께 작품에 출연 중인 남편 김우형과 집 근처 연습실을 빌려 공식 연습 때 한 분량을 따로 더 연습하는 시간을 가졌다.

“재활 치료를 하고 있어서 심리적인 압박감이 컸어요. 몸이 불편한 상황에서 연습량까지 부족하면 안 될 것 같다는 생각에 단체 연습 외에도 나만의 시간을 별도로 가져야 했죠. 가서 몇 시간씩 몰두하지 못하더라도 노래를 읊조리고 장면을 훑어보는 과정이 마음에 편안함을 줬어요.”

1999년 뮤지컬 ‘페임’으로 데뷔한 김선영은 올해로 51살이 됐다. 그는 “50대 초반에 타마라를 하고 있어서 어쩔 땐 후배들에게 기회를 더 줬어야 하는 게 아닌가 싶어서 죄송하기도 하다”며, “그래서 할 수 있는 만큼 더 최선을 다해야겠다고 생각한다”는 마음을 전했다.

“연습 초반에는 나이가 주는 신체적인 한계 때문에 물리적으로 이걸 해낼 수 있는지 고민이 들었어요. 욕심이 아닌가 싶기도 했는데 그때마다 남편이 ‘그냥 해. 가보는 거지’라고 해줬고, 그 말로 여기까지 왔죠. 감사한 것은 무대에 적응하면서 무대 체력이 더 단단해지는 것 같다는 점이에요. 이 공연을 기복 없이 잘 해내고, 후배들이 ‘저 역할 꼭 해보고 싶다’는 생각을 하게 만들 수 있다면 그것만으로도 성공한 것이라고 생각해요.”

그동안 메시지가 정확히 있는 작품을 선호했고, 그렇게 연기하려고 노력해 왔다는 김선영은 이번 ‘렘피카’에서도 명확한 답을 제시해야 할지는 고민하고 있다고 밝혔다. 그는 “설령 관객들이 정해진 답을 원한다고 하더라도, 우리는 작품을 통해 계속 질문을 던져야 한다고 생각한다”며 이 작품이 지닌 근본적인 의미를 말했다.

“이 작품은 타마라를 통해 결국 우리들의 모습을 이야기하는 것이 아닐까 싶어요. 어떠한 순간에 한 선택에 대해 스스로 정당성을 찾으려 하거나 후회하지 않고 그냥 가겠다는 설명할 수 없는 우리의 모습이 타마라에게 투영되어 있다고 생각해요.”

한편 ‘렘피카’는 오는 6월21일까지 코엑스아티움에서 공연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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