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리뷰] '클라이밍', 한 여자의 남은 삶을 결정할 두 자아의 줄다리기

임가을 기자 / 기사승인 : 2021-06-05 09:42:13
▲ 이미지: KAFA/트리플픽쳐스

 

극의 주인공 세현은 프로 클라이머다. 

 

세 달 전 겪은 교통사고로 인해 회복되지 않는 컨디션과 우수한 이전 성적을 이어가야 한다는 부담감, 점차 치고 올라오는 후배의 상승세로 인해 생긴 극도의 스트레스와 악몽에 시달리고 불안함을 끝없는 훈련으로 해소하려 한다.

훈련에 매진하던 어느 날, 세현은 분명 교통사고 탓에 고장이 난 핸드폰에서 진동이 울리고 있는 것을 발견하는데 핸드폰 액정에 보이는 이름은 명백한 자신의 이름이다. 설마 하는 마음에 전화를 받자 자신의 남자친구의 이름을 부르는 또 다른 자신의 목소리에 놀라 전화를 끊어버리고 만다.

믿을 수 없는 상황에 자신으로 추정되는 누군가에게 문자를 보내기 시작한 세현은 확인차 ‘세현’이 맞다면 스스로를 찍어 보내달라 요구하고 얼마 지나지 않아 자신과 똑같은 모습을 한 사람이 찍힌 사진이 도착하자 그제서야 핸드폰 너머에 있는 사람이 또 다른 자신임을 인정한다.

그렇게 두 세현이 서로 연락을 주고 받던 중, 클라이머 세현은 갑작스레 속이 좋지 않거나 폭식을 하게 되는 등 이유 없이 임신 증상을 보이게 되며 임신테스트기 마저 두 줄을 띄운 채 임신을 확인시켜준다.

의아해 하던 세현은 핸드폰 너머에 있는 또 다른 세현이 현재 임신한 채 남자친구 어머니 집에서 보살핌을 받고 있다는 것을 떠올리고 또 다른 세현과 자신이 서로의 몸과 정신에 영향을 끼칠 수 있다는 것을 알게 된다.

자신의 커리어를 위해 남자친구와의 결혼마저 회피하고 있는 세현에게 갑자기 찾아온 임신이 반가울 리 없다. 세현은 또 다른 세현에게 아이를 지워야한다고 말하지만 또 다른 세현은 아이는 지울 수 없다는 강경한 입장을 고수하고 두 세현 사이에 점차 갈등이 생겨난다.

<클라이밍>(6월 16일 개봉 예정)은 세현에게 또 다른 ‘나’에게 전화가 걸려오고 연락을 주고 받을수록 서로 연결되어 있음을 느끼다, 급기야 세현에게 또 다른 세현의 임신이 자신에게 영향을 끼친다는 것을 알게된 후 세현에게 일어나는 기이한 일들에 대한 이야기를 담은 영화다.

 

▲ 이미지: KAFA/트리플픽쳐스


<클라이밍>은 개봉에 앞서 ‘애니메이션계의 칸영화제’라 불리는 제 45회 안시 국제애니메이션 페스티벌 장편 콩트르샹 경쟁 부문에 초청되었다. <클라이밍>이 노미네이트된 장편 콩트르샹 경쟁 부분은 지난해 극장가에 10만 관객을 동원한 <기기괴괴 성형수>가 초청된 섹션이기도 하다.

영화에서 일차적으로 관객의 눈을 사로잡는 요소는 독특한 그림체다. 흔히 많은 사람들이 생각하는 애니메이션의 보편적인 그림체가 아닌 기괴하고 날카로운 그림체는 여러모로 강렬한 인상을 남기며 극의 공포감을 한껏 끌어올리는 역할을 한다.

영화는 2017년 김혜미 감독이 재학 중이던 한국영화아카데미 장편 11기 과정의 프로젝트로 시작되었고, 당시 아카데미 지도 교수의 지원으로 김혜미 감독은 3D 작업이라는 새로운 시도에 도전했다.

시나리오와 스토리보드 등 프리프로덕션 작업에만 약 1년이 걸렸고, 본격적인 제작인 애니메이션 액팅, 렌더링 등은 2018년 1월부터 2020년 5월까지 약 2년 5개월가량이 소요되었다. 이후 작곡, 더빙, 사운드 믹싱 등 후반작업을 거치며 총 3년 6개월 만에 프로젝트가 마무리 되었다.

영화를 직접 쓰고 연출한 김혜미 감독은 <클라이밍>을 쓰게 된 계기에 대해 “임신의 긍정적인 부분을 다룬 영화들이 많은 반면, 그 반대 성향의 영화는 드물다고 생각했으며 특히 외적인 요인이 아닌 산모의 내적 변화에 집중한 영화는 더욱 드물다고 생각했다. 그래서 임신을 통한 산모의 어두운 내면을 전면적으로 드러내 보자고 생각했으며 미스터리 공포라는 장르를 통해 임신의 다양한 측면을 입체적으로 표현해 보고 싶었다”고 말했다.


김혜미 감독이 클라이밍을 임신과 연결하게 된 계기도 인상적이다. 

 

김혜미 감독은 “로프는 클라이머에게 생명줄과 같을 텐데 영화 <클라이밍>에서는 이 생명줄이 아이의 탯줄도 함께 상징하고 있다. 이 생명줄을 서로 양쪽에서 잡고 있는 클라이머,

즉 엄마와 아이의 이미지를 떠올렸다. 클라이머로서 자아실현을 완성하고 싶은 엄마와 반드시 태어나야 하는 아이의 줄다리기는 절대로 양보할 수 없는 싸움일 거라 생각했다. 놓치는 순간 둘 중 하나는 사라지게 될 테니까”라고 말했다.

 

▲ 이미지: KAFA/트리플픽쳐스


영화는 평행세계의 자신을 만난다는 판타지적 요소를 포함하고 있지만 영화가 표현하는 세현의 심리 묘사는 임신에 대한 조금의 환상도 들어가있지 않으며 지극히 사실적이다.

그도 그럴 것이 임신은 산모에게 판타지가 아닌 현실이다. 임신을 하고 아이를 낳겠다고 결심한 순간 산모의 몸은 망가지고 산모 자신의 목표를 포기하면서 인생에 있어 자신이 책임져야 하는 사람이 늘어나게 되는 사실은 결코 거짓이 아니다.

이와 같은 내용을 담은 영화에 대해 일부 관객은 임신에 대해 부정적으로 생각하게 만드는 영화라 말할 수도 있지만 모든 일에는 양면이 있듯이 흔히 아름답고 경이롭다며 표현되는 사람의 잉태 과정을 말할 때 드러나 있지 않던 그림자를 적나라하고 신선하게 들춰낸 영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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