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WTV 스포츠W 임가을 기자] 32년 만에 연극에 도전한 이영애가 복잡하고도 매력적인 여자 ‘헤다 가블러’로 분해 무대에 오르고 있다.
‘헤다 가블러’는 세계적인 극작가 헨리크 입센의 작품으로, 억압된 시대 속에서 자유를 갈망하는 한 여성의 내면을 집요하고 섬세하게 파고든 고전 명작이다.
본 작품의 타이틀롤을 맡은 이영애는 최근 서울 강서구 LG아트센터 서울에서 국내 언론들과 라운드 인터뷰 자리를 가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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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사진=LG아트센터 |
이영애는 “감사한 마음뿐이다. 열심히 해서 좋게 봐주신 분들도 있지만, 아무래도 몇십 년 만에 처음으로 무대에 오른 공연이기 때문에 더 좋은 모습을 보여드리고 싶다는 생각이 들어서 계속 조금씩 갈고 닦으면서 무대를 즐기려고 하고 있다”면서, “캐릭터도 조금 더 쌓아나가서 더 많은 재미와 깊이를 주려고 노력하고 있다”고 참여 소감을 전했다.
1991년 ‘투유 초콜렛’ CF로 데뷔해 1993년 SBS 드라마 [댁의 남편은 어떠십니까]로 연기를 시작한 이영애는 ‘JSA 공동경비구역’, ‘봄날은 간다’ 등의 필모그래피를 쌓아갔고, 드라마 [대장금]으로 국내외로 신드롬을 일으켰다.
예술의전당 자유소극장의 개관작인 김상수 작·연출의 ‘짜장면’ 이후 32년 만에 연극 무대에 선 그는 작품이 성사된 계기에 대해 “타이밍이 잘 맞았던 것 같다”면서 지난 2월 드라마 [은수좋은날]의 촬영이 끝날 때쯤 작품 얘기가 구체화 되었다고 밝혔다.
이영애에게 연극에 대한 흥미를 불어넣어 준 것은 그의 학교 은사인 김미혜 교수다. 그가 다양한 연극을 접하도록 이끌어준 김 교수는 15년에 걸쳐 헨리크 입센의 희곡 전집을 한국어로 번역한 공로로 노르웨이 왕실 공로훈장을 받기도 했다. 당시 영광의 순간을 함께한 그는 김 교수와 입센 작품에 관해 이야기하면서 ‘헤다 가블러’에 대해 언급하기도 했다고.
“노르웨이 대사관에서 열린 리셉션에 함께하면서 입센 작품에 관해 얘기하다 만약 입센 작품을 하게 된다면 ‘헤다 가블러’가 좋을 것 같다고 말했다. 그리고 작년에 LG아트센터장님의 초대로 ‘벚꽃 동산’을 관람하면서 20대 때 올랐던 무대에 대한 동경이 다시 떠올랐고, 또 출산과 육아, 연예계 활동과 사회생활을 경험하면서 성숙해지고 다양한 감정들이 켜켜이 쌓인 지금, 50대야말로 ‘헤다’를 표현하기에 적당한 시기라는 생각이 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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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사진=LG아트센터 |
그래서인지 이영애는 오랜만에 무대에 올라 입을 옷으로 ‘헤다’를 고집했다. “제가 연극에 관심이 있다는 걸 주변 분들이 알았을 때 여러 제의를 해주셨다”고 말한 그는 “LG아트센터에서도 다른 작품을 제안했었는데, 제가 ‘헤다 가블러’가 더 좋을 것 같다고 제안해서 작품이 바뀌었던 후일담이 있다. 다른 작품이 있었어도 이 작품을 고집한 걸 보니까 제가 헤다를 하고 싶었었나보다”라고 말하며 미소 지었다.
이러한 과정 끝에 얻어낸 꿈의 배역이었지만 30년 만의 연극 무대, 그리고 ‘헤다 가블러’라는 인물은 그에게 마냥 즐거움만을 안겨주지는 않았다. 대사를 잊어버리고, 관객이 나가는 악몽까지 꿀 정도로 대사에 대한 부담이 많았다고 토로한 이영애는 ‘헤다 가블러’를 ‘고통의 선물’이라고 칭하며 부담과 동반한 열정을 드러냈다.
“제목부터가 ‘헤다 가블러’인 것처럼 오로지 ‘헤다’를 중심으로 그려간다. 이렇게 크고 행복한 짐이 될 줄은 몰랐다. 모르면 용감하다고 무작정 ‘헤다 가블러’라는 그 타이틀을 내가 얻고 싶다는 배우로서의 욕망과 욕심이 있었던 것 같다. 타이틀 롤이기도 했고, 여배우로서 다양한 걸 많이 보여주고 싶고 표현하고 싶었다. 이왕이면 ‘헤다 가블러’를 통해 드라마나 영화에서 보여주지 못했던 것을 무대 위에서 펼치고 싶었다.”
3개월 남짓한 연습 기간은 그간 이영애가 활약했던 영화나 드라마와 같은 매체에 비하면 긴 시간이 주어졌지만, 그마저도 헤다라는 인물에 온전히 파고들기에는 부족한 시간처럼 여겨지기도 했다. 따라서 최근 그는 오로지 ‘헤다 가블러’에만 몰두하는 삶을 살고 있다.
“오로지 공부하는 마음으로 집중하고 싶다는 것이 연극을 하고 싶었던 이유 중 하나였다. 근데 하다 보니까 한 캐릭터에 집중하는데 석 달도 부족하다는 게 느껴졌고, 이게 내가 생각한 것처럼 그렇게 만만한 게 아니구나, 내가 너무 쉽게 생각했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래서 공연하는 동안에는 집과 극장밖에 안 오갈 것 같다. 다른 개인적인 약속도 다 취소하고 오로지 작품에만 집중해서 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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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사진=LG아트센터 |
30년 넘게 연기를 해왔지만, 무대 연기에 익숙지 않은 만큼 많은 걱정이 따라왔다. 무엇보다 전달력이 중요한 연극에 참여하면서 느끼는 고충에 대해 전하기도 한 이영애는 동료들로부터 많은 조언을 얻었다고 밝혔다.
“다행히 마이크를 사용하니까 성량에 대한 리스크는 적지만, 그래도 발성 같은 부분은 지금 같은 작품을 하고 있는 훌륭한 배우분들한테 많이 가르쳐 달라고 했다. 그분들은 다들 큰 무대를 많이 서셨던 분들이니까 무대를 넓게 쓰신다. 몸을 쓰는 부분 관련해서도 고민을 털어놓으면 아이디어를 주시기도 해서 액팅 라인이 많이 바뀌기도 했다. 그 외 기술적인 면에서도 많이 배우고 있다,”
특히 이번 ‘헤다 가블러’는 국립극단에서 동시기에 공연해 화제가 되기도 했다. 그중에서도 같은 역을 연기하는 이혜영은 연극계 베테랑으로 13년 전 같은 작품을 통해 관객과 평단의 호평을 받기도 했다.
이혜영과 같은 이름으로 무대에 오르는 것에 대해 이영애는 “그 소식을 들었을 때 후배로서 이걸 해도 되는 건가 고민을 좀 했었다. 근데 그런 것보다 연극계에서 서로 좋은 시너지가 있으면 좋지 않을까 싶었다”면서, “이혜영 선생님만의 색깔이 있는 헤다가 있고, 나 역시 나만의 색깔이 있는 헤다를 그려낼 수 있으니까 두 ‘헤다 가블러’를 비교해 보는 것도 재미있을 것 같다. 헤다의 색깔은 정답이 없다고 생각한다”고 말했다.
이영애가 맡은 헤다 가블러는 아름다운 외모를 지닌 여성으로, 사랑 없는 결혼을 한 후 이유 모를 권태를 느끼며 파괴적인 성질을 보이는 독특하고도 복잡한 캐릭터다. 그는 헤다를 그릴 때 관습에 얽매인 고통보다는 현대 사회에서 받는 스트레스를 나타내는 데 중점을 뒀다고 밝혔다.
“겉으로는 아무렇지 않고 평범하게 살아가는 사람이라 해도 그 속에는 누구나 조금이나마 헤다가 있지 않을까 싶었고, 그걸 연극적으로 한번 풀어보면 어떨까 생각하면서 연기를 시작했다. 그래서 무대 위에서는 자유롭고 싶고, 날아가고 싶은 헤다의 입장에서 연기를 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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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사진=LG아트센터 |
극 중 헤다가 보이는 행보는 기행이라 불려도 과언이 아닐 정도로 일반적인 사람이 이해하고 공감하기에는 무리가 있는 인물이다. 이에 대해 이영애 역시 “헤다는 모든 사람을 설득할 수 있는 인물은 아니다”라고 말했지만, 그럼에도 조금은 ‘말랑말랑한’ 헤다를 표현하고 싶었다고 전헀다.
“예민하긴 하지만 어딘가에는 있을 법한 헤다를 그리고 싶었다. 그럼에도 헤다에게 이해되지 않는 면이 있긴 하다. 하지만 그렇게 이해가 안 되는 사람도 세상에 있지 않나. 내 안의 나도 이해할 수 없는데 우리 사회에 다 이해할 만한 사람만 있는 건 아니라고 생각한다. 그럼에도 보는 사람들이 ‘그럴 수 있겠다’라고 생각할 수 있게끔 장치적인 요소들을 가미했던 것 같다.”
작품 역시 원본 희곡보다는 한층 더 부드러워졌다. 이번 공연에서 활용한 리처드 이어의 각색본에 대해 이영애는 “조금 더 라이트해진 것 같다. 대사도 은유가 많이 깃들지 않고 짤막해서 조금 더 이해하기가 쉽다”면서, “그럼에도 맨 처음 공부할 때 김미혜 교수님의 원작 완역본을 같이 보면서 했다. 헤다는 해석하기 어려운 인물이기 때문에 입센은 이 지문을 어떤 생각으로 썼을지, 온전한 작가의 생각을 알고 싶어서 두 각본을 병행하면서 했다”고 밝혔다.
리처드 이어의 각색본 위로는 제54회 동아연극상 연출상을 수상한 전인철의 손길이 더해졌다. 헤다가 자신을 비추는 스포트라이트를 느끼면서 홀로 걸어가는 강한 임팩트의 첫 등장은 전 연출의 디렉팅이며, 카메라를 활용해 광활한 벽면에 이영애의 모습을 영상으로 비추는 것 역시 전 연출의 아이디어에서 비롯됐다.
“저는 너무 좋다고 말씀드렸다. 아무래도 제가 앵글 안에서만 연기를 해왔던 사람이니까 그 안에서 보여줄 수 있는 게 더 많을 수 있고, 또 이 큰 극장에서 크게 보지 못하는 분들을 위해서 그런 감정들을 영상으로 보여주는 것도 좋겠다고 생각했다. 특별한 어려움은 없었지만, 연극 무대 위에서 카메라도 보고 관객도 저를 봐야 하는 그 두 가지 요소를 만족시킬 수 있게끔 여러 번 연습하고 노력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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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사진=LG아트센터 |
전 연출과의 작업 과정에 대해 “모두에게 의견을 많이 받으신다”면서, “자유롭게 의견을 주고받으면서 더할 건 더하고 뺄 건 빼는 과정 자체가 되게 재미있었다”고 회상한 이영애는 완성된 ‘헤다 가블러’에서 본인의 아이디어가 반영된 부분에 대해 언급하기도 했다.
“헤다가 풍선을 끌고 와서 짓이기는 것도 리허설할 때 제 감정에서 나온 액팅이었는데, 오롯이 받아주셔서 무엇이든 다 할 수 있겠다는 자신감을 얻게 되었다. 또 제가 오랫동안 카메라 연기를 해왔으니까, 카메라를 활용한 장면은 더 많이 받아주셨다. 그중 하나가 원고를 태우는 장면인데 불 뒤에서 대사하는 얼굴을 카메라로 찍는 것도 제가 제안해서 만들어진 장면이다.”
의상에 관련된 부분에서도 이영애의 의견이 가미됐다. 그는 헤다와 관련된 키워드로 보라색과 치마바지를 꼽으며 헤다에 대한 애정이 담긴 해석을 풀어놓았다.
“레드라고 하기에는 어둡고, 또 완전히 어둡기만 하기에는 강렬함도 있기 때문에 누구나 어울릴 수 없고 조금 거리감 있는 퍼플이 잘 어울렸다. 또 헤다는 스커트보다는 바지가 어울릴 듯한데, 또 바지라고 하기에는 관습적인 제도의 틀에 갇혀있기 때문에 이도 저도 못하는 치마바지가 아닐까라고 생각했었다. 그 생각이 서로 잘 맞아서 이 방향 그대로 가게 되었다. 의상의 보라색을 잘 살리기 위해서 옷을 직접 염색하셨다고 하더라.”
이번 연극 도전에 대해 “너무 힘들지만 세 배, 네 배 더 재미있었다”고 전한 이영애는 “이번 기회에 배우로서 정말 많이 배웠다. 그동안 내가 너무 쉽게 연기를 해온 건 아닌가 하는 반성도 들었고, 다음 작품은 무엇을 하든 더 열심히 해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면서 다음에도 연극 작품에 참여할 의향이 있다고 밝혔다.
“이번 작품은 워낙 극장이 크니까 무대 미술을 감상할 수 있는 장점이 있지만, 온전히 배우 하나의 심리를 끌고 가기에는 관객분들께 미안하다는 생각도 조금 들었다. 그래서 다음에는 관객분들과 제가 심리를 주고받을 수 있을 정도의 밀도 있는 공간에서 하는 연극도 참 재미있겠다고 생각하게 되었다.”
한편 ‘헤다 가블러’는 이영애, 김정호, 지현준, 이승주, 백지원, 이정미, 조어진이 출연하며 오는 6월8일까지 LG아트센터 서울, LG SIGNATURE 홀에서 공연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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