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터뷰] 황석희, 뮤지컬로 다시 한번 옮긴 ‘원스’ 의 음악 “번역가만의 욕심이죠”

임가을 기자 / 기사승인 : 2025-04-11 16:53:3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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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WTV 스포츠W 임가을 기자] 영화 ‘원스’를 한국어로 옮겼던 번역가 황석희가 이번에는 뮤지컬로 가이와 걸의 이야기를 전한다.


‘원스’는 거리의 기타리스트와 꽃을 파는 이민자의 운명 같은 만남과 끌림의 시간들을 그려낸 뮤지컬로, 2007년 아일랜드에서 제작된 동명 영화를 원작으로 한다. 이번 공연은 2014년 한국 초연을 올린 이후 10년 만에 돌아온 재연 시즌으로 화제를 모았다.

뮤지컬 ‘원스’의 번역을 맡은 황석희는 최근 서울 종로구 모처에서 국내 언론들과 라운드 인터뷰 자리를 가졌다.

 

▲ 황석희 [사진=신시컴퍼니]


앞서 동명 영화를 먼저 번역했던 황석희는 “번역가는 그런 욕심이 있는데, 제가 번역했던 영화여서 뮤지컬도 같이 해보고 싶었다”면서 이번 뮤지컬 ‘원스’에 참여하게 된 소감을 전했다.

‘데드풀’ 시리즈, ‘스파이더맨’ 시리즈 등의 영화에서의 센스있는 번역으로 대중들에게 이름을 알린 황석희는 2019년 뮤지컬 ‘썸씽 로튼’을 시작으로 공연에서도 활약하게 됐다.

이번 작품이 열 번째 참여한 공연이라 밝힌 그는 ‘원스’의 작업 과정이 앞서 참여한 작품과는 확연히 달랐다고 말했다.

“뮤지컬 곡들은 대부분 기타보다는 건반으로 작업하는 경우가 많았고, 애초에 기타 곡이 그렇게 많지 않다. 근데 ‘원스’는 음악 테마 자체가 아일랜드 포크 음악이다. 어렸을 때부터 기타에 익숙했고, 기타 음악 자체도 좋아해서 여러모로 마음이 편한 작품이었다.”

고등학교 때부터 기타를 쳤고, 10년이 넘는 세월 동안 밴드와 버스킹을 하기도 한 황석희는 이번 작품을 통해 오랜만에 기타를 품에 안았다.

 

▲ 사진=신시컴퍼니

 

그는 “기타를 치는 사람들은 대부분 집에 기타가 있으면 시도 때도 없이 끌어안고 긁는다. 이충주 배우님한테 공연이 끝나도 평생 친구처럼 기타를 끌어안고 있으실 수 있을 거라고 말했던 적이 있다”면서, “기타는 잘 치고 못 치고를 떠나서 아무 때나 끌어안을 수 있다는 점에서 특별한 악기 같다”고 말해 특별한 애정을 보였다.

기타라는 옛 동료와 재회하게 된 것에 대해 ‘반갑다’고 표현한 황석희는 그가 음악을 하던 시절부터 함께해왔던 아내와 관련된 에피소드를 풀어놓기도 했다.

“아내는 제가 일에 치여 사는 걸 안쓰러워하고 수입이 줄더라도 예전처럼 음악도 하고 여유를 좀 찾았으면 좋겠다고 말해주기도 했는데 프리랜서가 마음대로 조절해서 일할 수 있는 게 아니라 늘 허덕이며 일할 수밖에 없었다. 제 방 벽에는 기타가 네 대나 걸려 있는데, 평소에는 그 기타들을 칠 일이 거의 없어서 늘 먼지가 쌓여 있었다. 근데 이번 작업을 하면서는 기타를 끌어안고 치면서 녹음하니까 아내가 문간에 서서 쳐다보더니 보기 좋다고 하더라”

반가운 인연이 닿았다 한들, 기타와의 작업이 마냥 수월하지는 않았다. 이번 ‘원스’를 굉장히 어려운 작업이었다고 칭하기도 한 황석희는 직접 기타를 치고 노래를 부르며 가이드 녹음을 해서 전달하기도 했다고 밝혀 놀라움을 주었다.

“포크 음악, 그중에서도 아일랜드 포크는 음표와 상관없이 막 부르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우리나라 아저씨들이 술 한잔하시고 흥에 겨워 부르는 노래처럼 박자가 상관이 없다. 보통 작업할 때는 음표 위에 한 음절, 많게는 두 음절 정도의 가사를 올려서 드리는데 '원스'는 코드 한 번 긁어놓고 시를 읊조리듯이 말하는 게 대부분이니까 그걸 보고 부르기가 더 힘든 거다. 그래서 어떻게 불러야 하는지 설명하려면 가이드를 녹음하는 수밖에 없었다. 제가 좋아하는 장르의 음악이라서 잘하고 싶었던 마음이 컸던 것 같다. 또 포크 음악 특유의 어미 같은 표현들에 집착하면서 살리려고 애써서 시간이 오래 걸렸다.”

 

▲ 사진=신시컴퍼니

 

이렇게 공을 들인 황석희의 가사는 대한민국 포크의 계보에 있는 이정열이 직접 부르게 되어 의미를 더했다. 이번 ‘원스’에서 ‘가이’의 아버지인 ‘다’ 역을 맡은 이정열에 대해 황석희는 “캐스트가 공개되고 이정열 배우님이 '원스'에 참여한다는 소식을 들었을 때 연출님께 전화해서 정말 그분이 맞는지 물어봤다”면서 남다른 팬심을 드러냈다.

“이정열 배우님의 1, 2집 노래를 다 외울 정도로 좋아했다. 처음 뵀을 때는 너무 좋아하는 분이라 가까이 못 가겠더라. 그래서 연출님이 손목 끌고 가서 인사시켜 주셨다. (웃음) 제 기타 가져가서 사인도 받았고, 배우님이 하나밖에 없는 앨범도 선물로 주시기도 했다.”

가장 만족스러운 작업물도 본 극이 시작되기 전 프리쇼에서 '다'가 부르는 넘버인 'Raglan Road’였다. 이 넘버에 대해 황석희는 “아일랜드 포크의 정수 같은 곡”이라면서, “그분이 이 곡을 부른다고 하니 정말 잘 써야겠다는 생각이 머릿속에 계속 맴돌았다”고 말해 남다른 각오로 가사를 옮겼음을 밝혔다.

“정말 멋있게 부르게 해드려야겠다고 생각했다. 도움이 됐던 건 제가 이정열 배우님이 어떤 발음을 멋있게 내는지도 다 알고 있었다는 점이다. 'Raglan Road'에도 그 음절이 뜨문뜨문 등장하는데 '와, 여기서 이거 부르시면 진짜 멋있겠다' 같은 생각으로 제가 듣고 싶어서 그랬다. 사실상 팬이 쓴 가사를 부르고 계신 셈이다. 그래서 그런지 가사가 생각보다 잘 나왔고, 포크라는 분야에 맞게 잘 썼다는 느낌이 든다.”

반면 매끄럽게 번역이 이루어지지 않아 어려움이 있었던 작업물도 존재했다. ‘원스’의 대표곡이자 영화나 뮤지컬을 보지 않았더라도 대중들에게 널리 알려진 ‘Falling Slowly’는 언뜻 보면 원문과 거리가 멀게 번역이 된 것처럼 보였다.
 

▲ 사진=신시컴퍼니

 

이에 황석희는 “‘Falling Slowly’는 가이와 걸의 관계를 처음부터 끝까지 말해주는 가사다. 번역가의 입장에서는 그것을 관객에게 전해줄 의무가 있다고 생각했다”면서, “‘Falling Slowly’나 ‘sinking boat’ 같은 유명한 표현을 한국어 가사에 그대로 살리지 못한 건 저로서도 유감스럽다. 하지만 이런 아쉬운 부분들을 제외하고는 거의 모든 원문 가사를 최대한 살려서 넣었다”고 설명했다.

“아일랜드는 섬나라이다 보니까 어떤 노래나 문학 작품이든 바다나 배에 대한 메타포가 굉장히 많다는 점을 중요하게 생각했다. 이 노래도 바다에 대한 메타포를 담고 있다. ‘Falling Slowly’도 지금 물이 새고 있는 배인데, 지금 당장 타고 가면 저 바다 너머 우리만의 집까지 갈 수 있다는 의미로 부르는 노래다. 바다 위 배에 늦지 않게 타기 위해 용기를 내야 하고, 그 위에서 희망찬 목소리를 드높이면서 가는 이미지와 뉘앙스를 녹이려고 노력했다.”

드라마 번역에 있어서는 유머러스한 부분이 더 많이 살아났다. 황석희는 “초연과 재연을 모두 보신 관객분들 중에 '재연에는 왜 이렇게 유머가 많아졌지?'라고 말씀하시는 분들도 계시는데, 제가 넣은 게 아니라 원래 대본 자체가 그렇다”면서 대본을 한국어로 새로 옮기는 부분에 있어서 특히 신경쓴 지점을 밝히기도 했다.

“번역 제안을 받았을 때 이지영 연출님께서 가장 걱정하셨던 부분이 재미가 없다는 것이었다. 그런데 막상 영문 대본을 받아보니 위트를 살릴 만한 구석이 아주 많았고, 제 기준에서는 정말 유쾌하고 리듬감 있게 풀 수 있는 여지가 많았다. 영화 번역을 오래 해 왔기 때문에 그런 뉘앙스랑 더 잘 맞는지 모르겠지만 제 생각보다 훨씬 유머러스하게 살릴 수 있는 지점이 많았다. 해외 연출진도 유머가 등장해야 한다고 생각했던 지점에서 그런 대사들이 나온다는 점을 굉장히 좋아하셨다.”

극 중 체코 이민자로 등장하는 ‘걸’의 억양 역시 유쾌한 분위기를 더하는 부분으로 작용하기도 했지만, 자칫하면 우스꽝스럽게 들릴 수 있어 주의가 필요했다.

“초연 때 배우분들도 까딱 잘못했다가는 개그콘서트에서나 나오는 외국인 흉내 내는 사람처럼 될 거라 고민을 많이 했다고 들었다. 억양은 배우분들이 표현해 주시는 거니까 이번 대본을 만들면서 제가 할 수 있었던 건 어순을 갖고 노는 것이었다.”

 

▲ 사진=신시컴퍼니

 

독특한 걸의 말투는 황석희의 손만 닿아서 완성되지 않았다. “재미있는 건 제 딴에는 외국인이 영어를 하는 것처럼 만들어 놓았는데 배우분들을 거기서 한 발짝 더 나아가시더라”라고 말한 그는 배우와 함께 발전시킨 결과물과 그에 얽힌 에피소드를 풀어놓았다.

“‘이 물병이가’ 같이 조사를 2개를 쓴다거나 어미를 중첩해서 쓰는 등 대본에 쓰지 않은 걸 연구해서 붙이셨다. 어떨 때는 ‘어 저 대사 틀리셨는데’ 싶었지만, 언어에 서툰 사람처럼 자연스럽게 넘어가는 일도 있었다. 저는 대본을 쓴 사람이니까 알지 않나. 분명히 실수하셨는데 익숙하게 그 말을 더듬으면서 넘어가시는 거다. (웃음) 외국어 표현에 있어서는 제가 써드린 대본에서 몇 발짝을 나아가시는 것 같다.”

넘버와 드라마를 통틀어 황석희가 번역에 있어서 가장 중요하게 생각하는 것은 원작자의 표현과 위트를 그대로 관객에게 전달하는 것이다. 그는 “관객분들은 제가 만든 걸 들으러 오는 게 아니라 원작자의 작품을 즐기러 오는 것”이라 강조했다.

“원작자의 표현과 위트를 한국어 가사로 옮기면서 어떤 분은 어색하게 느껴질 수도 있다. 그래서 제 임무는 최대한 어색하지 않게 원작자의 표현과 위트를 살리는 것이라고 생각한다. 이건 일종의 의무감이기도 하고 번역가로서의 오기이기도 하다.”

앞으로 황석희가 관객들에게 기억되고 싶은 이미지 역시 비슷하다. 그는 “관객분들이 황석희 번역가가 번역한 작품을 보면 원문에서 원작자가 의도한 뉘앙스나 정서들이 많이 녹아 있겠다는 기대를 하고 보실 수 있었으면 좋겠다”는 바램을 전했다.


“관객분들이 모두 원문과 대조해서 보는 건 아니기 때문에, 어떤 분들은 번역가가 지어낸 게 아닌지 의심할 수도 있다고 생각한다. 하지만 제가 참여한 작품을 보실 때는 이 사람이 원작자의 정서를 깊이 옮기려고 노력했고 세밀하게 전달하려는 의무감을 가진 채 작업했다는 생각을 갖게 되셨으면 좋겠다.”


이번 ‘원스’를 통해 과거의 꿈과 현실의 교차점에 선 황석희는 꿈을 좇는 가이와 같은 이들에게 조언을 남겼다. 3년 뒤 쉰에 접어드는 그가 생각하는 삶의 핵심은 “인생은 반드시 의도한 대로 되는 게 아니라는 것”이다.

“지금 내 길이 막혀 있다면 그냥 그대로 흘러가는 것도 괜찮다고 생각한다. 운이 좋다면 저처럼 다른 길을 가다가도 예전에 좋아하던 것들과 교차하는 지점이 생기기도 하고, 설령 그런 지점이 생기지 않더라도 나중에 삶의 여유가 생기면 그 방향으로 조금 틀어보겠다는 욕심을 부려볼 수도 있다. 영어에서는 ‘너 정신 차려’라는 말을 할 때 ‘keep your feet on the ground’라고 말한다. 두 다리 모두 땅에서 떨어져 있으면 위험하다. 꿈이라는 불씨를 지필 장작을 마련할 수 있게 한쪽 다리 정도는 현실에 디딜 수 있어야 한다고 생각한다.”

한편 ‘원스’는 윤형렬, 이충주, 한승윤, 박지연, 이예은, 박지일, 이정열, 김진수 등이 출연하며 오는 5월 31일까지 코엑스 신한카드 아티움에서 공연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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