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WTV 스포츠W 임가을 기자] “정말 어리고 여린 세훈이를 만들고 싶었어요. 그렇게 해야 관객분들이 세훈이의 선택을 이해하실 수 있을 것 같다고 생각했죠.”
SWTV는 최근 서울 서초구 소재의 예술의전당에서 뮤지컬 ‘팬레터’의 ‘세훈’ 역을 맡은 원태민과 만나 작품에 관해 이야기를 나누는 시간을 가졌다.
‘팬레터’는 1930년대 일제강점기를 배경으로 김유정과 이상 등 당대 문인들의 모임 ‘구인회’의 일화에서 모티프를 얻어 창작된 뮤지컬 작품이다. 2016년 초연된 작품은 올해 10주년을 맞이하며 다섯 번째 시즌을 개막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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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사진=라이브 |
원태민은 “너무 유명하고 해보고 싶었던 작품이라서 잘 해내야겠다는 생각이 제일 컸다”며, “10주년 된 작품은 다 이유가 있다는 걸 느끼고 있다”고 참여 소감을 전했다.
“‘팬레터’는 뮤지컬에 조금이라도 관심이 있다면 거의 다 아는 작품이잖아요. 학교 다닐 때부터 알고 있었고, ‘팬레터’의 대표 넘버인 ‘내가 죽었을 때’랑 ‘해진의 편지’를 수업 시간에 부르기도 하고, 혼자서 연습하기도 했어요.”
당시 공연을 직접 보지 못한 대신 영상을 많이 봤다고 전한 그는 현재 무대에서 함께 호흡을 맞추고 있는 배우를 언급하기도 했다.
“(이)규형 선배님이 원고지에 글을 적으면서 ‘해진의 편지’를 부르는 뮤직비디오가 엄청 유명했던 걸로 기억나요. 또 김성철 선배님이 연기하신 프레스콜 영상도 많이 봤죠. 그 당시에는 제가 매체 연기를 먼저 시작해서 뮤지컬을 하게 될 줄은 몰랐었는데, 뮤지컬을 하면서는 이 작품을 더 하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팬레터’라는 제목과 원고지를 소재로 사용한 키 비주얼에서 알 수 있듯 작품은 글이라는 요소와 밀접하게 맞닿아 있다. 어린 시절부터 장르를 가리지 않고 소설책을 읽는 걸 좋아했다는 원태민은 ‘팬레터’를 통해 새로 느끼게 된 글의 매력에 대해 말했다.
“요즘 다들 전자책을 많이 봐서 저도 최근에 같은 방식으로 읽어봤어요. 근데 세훈으로서 원고지에 글을 쓰고 있으니까, 종이에 찍힌 활자를 읽고 종이의 질감을 손으로 느끼는 종이책의 매력을 다시 한번 실감했죠. ‘팬레터’도 완전히 화려하기보다는 클래식한 공연인데, 이러한 클래식이 주는 힘을 느끼면서 공연하고 있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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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사진=라이브 |
그가 연기한 세훈이 조선의 문인들을 동경하는 문학도인 만큼, 작품에는 서정적인 표현이 깃든 문구와 편지를 읽는 장면이 등장하기도 한다. 원태민은 “글자 하나하나가 주는 의미와 예쁜 말들을 살리면서 읽으려 한다”며 인상적인 구절을 직접 소개했다.
“해진 선생님이 ‘조광’ 호에서 쓴 새로운 수필에서 ‘뻐꾸기도 이 내음새에는 민감인 모양이다. 이때로부터 하나둘 울기 시작한다’라는 구절이 정말 아름다워요. 이 수필을 읽고 세훈이 해진 선생님한테 보낸 편지에서 ‘고향에 대한 묘사는 너무나 아름다웠지만 몹시 슬펐습니다. 왜냐하면 그곳은 있을 수 없는 곳이기 때문입니다’라고 쓴 부분도 인상 깊었죠. 타지에서 의지할 곳 하나 없는 세훈의 처지를 말해주고 있는 것 같았어요.”
‘팬레터’는 천재 소설가 해진과 그를 동경하는 작가 지망생 세훈, 그리고 해진의 뮤즈이자 비밀에 싸인 작가 히카루의 예술혼과 사랑을 그린다. 원태민이 연기한 세훈은 작품의 화자로 이야기를 이끌어가며, 해진에 대한 애정과 글을 향한 욕망 사이에서 수없이 갈등하게 된다.
“세훈이한테 몰입한 채로 안절부절못하면서 대본을 읽었던 기억이 나요. 처음에는 세훈이를 100% 이해하기는 힘들었어요. 연기를 할 때 ‘내가 그 인물이라면’이라는 생각으로 시작해서 캐릭터를 구축해 가는 편인데 저라면 빨리 밝혔을 것 같다는 생각도 들었거든요. 근데 갈수록 세훈이의 입장이 이해되면서 양가감정이 들었던 것 같아요.”
이번 작품에 참여하며 ‘나만의 세훈’을 만들겠다는 생각으로 임했다는 그는 원태민이 연기한 세훈의 특징에 대해 팬들의 표현을 빌려 ‘털 날리고 붕방거리는 대왕 큰 강아지, 리트리버’라고 칭했다. 이러한 캐릭터성은 그가 그린 세훈의 서사에 설득력을 부여하는 요소가 되기도 했다.
“저는 정말 어리고 여린 세훈이를 만들고 싶었어요. 그렇게 해야지 관객분들이 세훈이의 선택을 이해하실 수 있을 것 같다고 생각했거든요. 저조차도 처음에는 세훈의 선택을 100% 이해하지 못했기 때문에 덩치는 크더라도 속에 있는 알맹이는 순수하고 여린, 그리고 선생님을 너무 좋아하고 동경하는 세훈이를 구축해 나갔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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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사진=라이브 |
이러한 캐릭터의 특징을 가장 잘 보여주는 장면으로는 세훈이 칠인회 문인들과 대면했을 때의 장면을 꼽았다.
“이윤 선생님께 마지막으로 인사하는 장면의 대본에 ‘선생님 죄송합니다. 죄송했어요’라고 쓰여있었는데, 저는 그 대사 다음에 ‘제가 다 잘못했어요’라는 말을 너무 하고 싶었어요. 이 말을 꼭 하고 싶어서 극의 흐름에 방해되지 않는 선에서 조금 변형을 줬죠. 또 칠인회 선생님들을 처음 만나러 왔을 때도 그분들의 글과 문학을 동경하는 모습을 좀 더 많이 표현하려고 했어요.”
캐릭터의 내적인 구축뿐만 아니라 외적인 변화에도 공을 들였다. 소년미가 돋보이는 세훈의 이미지를 시각적으로 구현하기 위해서였다. 원태민은 “이번 작품을 위해 다이어트를 많이 했다”면서, “원래 운동을 좋아하지만, ‘팬레터’를 하는 동안에는 근력 운동은 거의 안 하고 유산소 운동만 해서 5kg 정도 감량했다. 근래 들어 최저 몸무게를 유지하고 있다”고 언급했다.
세훈은 자신과 마찬가지로 외로움이라는 감정을 가진 해진과 공명하며, 그가 써 내려가는 아름다운 글에 지대한 애정을 갖는다. 세훈이 해진에게 품은 감정을 두고 관객들의 해석은 분분하지만, 그는 “그저 형태가 다른 것뿐”이라면서, “선생님의 글에 대한 동경과 인물에 대한 사랑을 구분 짓지 않았다”고 설명했다.
이어 그는 “해진 선생님에 대한 마음을 담은 ‘눈물이 나’ 넘버를 부를 때는 김춘수 시인의 ‘꽃’이라는 시가 생각난다”며, “선생님이 내 이름을 불러줬을 때 비로소 내가 선생님께 꽃이 됐으면 좋겠다는 생각으로 부르려 한다”고 전했다.
세훈과 해진의 관계는 세훈의 욕망으로부터 탄생한 또 다른 인격 히카루가 등장하며 파멸로 치닫게 된다. 세 사람이 원고지를 주고받으며 추는 격정적인 왈츠로 이들의 관계를 시각적으로 드러낸 장면 ‘섬세한 팬레터’는 작품 전체를 관통하는 하이라이트로 꼽힌다.
“검은 공간과 조명 안에서 히카루라는 빛과 세훈이라는 그림자의 경계가 모호해지는 순간이라고 생각해요. 저도 어떠한 감정으로 연기해야겠다고 생각하기보다는 해진 선생님과 히카루의 행동에 따라서 휘둘리고 있어요. 그 짧은 순간에 오만 가지 감정이 드는 것 같아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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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사진=라이브 |
동경하는 선생님을 향한 풋풋한 설렘부터 펜으로 자신의 손등을 내려 찍을 정도의 절망까지, 널뛰는 감정을 소화해야 하는 역할인 만큼 에너지가 많이 소모되는 작품이기도 하다. 이에 원태민은 “무슨 극이든 감정적 소모는 당연히 배우로서 있어야 한다고 생각한다”고 답했다.
“최근에 ‘라흐마니노프’를 공연할 때도 많이 울었어요. 그때도 든 생각이지만 힘들다기보다는 제 속에 감정들이 싹 비워진 느낌이 들어요. 보통 사람이 일주일에 서너 번씩 울 일이 거의 없잖아요. 울고 화내고 싶은 감정을 참고 사는 사람들이 많은데 배우는 연기하는 순간에는 모든 감정을 다 표출할 수 있어서 좋아요. 배우로서도 좋은 영양분이 되는 것 같아요.”
지난 2024년 ‘이프아이월유’로 뮤지컬에 처음 도전한 원태민은 올해 뮤지컬 데뷔 2주년을 앞두고 있다. 그는 “예전부터 무대에 대한 동경과 그 무대에 서는 배우들에 대한 선망이 있었다”면서, “관객들이랑 호흡하면서 처음부터 끝까지 감정을 논스톱으로 가져가는 걸 꼭 해보고 싶었다”고 무대에 도전하게 된 계기를 언급했다.
데뷔 이후 지난해 동안 쉴 틈 없이 무대에 오르며 활약한 그는 2인극 뮤지컬부터 즉흥 1인극, 대형 뮤지컬까지 다양한 작품을 경험했다. 그는 “아직 너무 부족해서 많이 배우고 있다”고 겸손한 태도를 보이면서도 “최선을 다하는 건 똑같지만, 그때는 잘 해내야만 한다는 생각 때문에 여유가 없었던 것 같다”며 이전의 자신을 돌아보기도 했다.
“연기를 계속하고 싶고, 잘하고 싶은 욕망이 큰데 그게 욕심으로 비치면 안 되는 것 같아요. 작년에 무대를 계속하면서 잘해야 된다는 생각이 계속 들다 보니까 그 인물로서가 아닌 원태민으로서의 욕심이 자꾸 나오더라고요. 이걸 어느 순간부터 느껴서 같이 하고 있는 배우와 이 상황에만 집중하자고 생각이 바뀌었어요. 이 부분을 계속 잡아가는 게 앞으로의 숙제라고 생각해요. 그저 이 작품에 대한 진심과 노력했던 시간을 믿고 하면 된다고 생각하고 있어요.”
병오년 초입부터 뮤지컬 ‘팬레터’와 연극 ‘빵야’ 캐스팅에 이름을 올린 그는 여전히 무대와 깊은 사랑에 빠져있다. 원태민은 “공연을 할수록 직접적으로 관객을 만나서 같이 호흡한다는 느낌이 든다”며 직접 느낀 무대의 매력을 말했다.
“다른 생각이 아예 안 들고 무대 위에 서 있는 사람들만 느껴지는 순간이 공연할 때마다 한두 번씩 있어요. 그 순간에는 정해진 순서에 맞춰서 대사를 하는 게 아니라, 완전히 캐릭터로서 말이 튀어나오는데 그럴 때 배우로서 짜릿함을 느끼죠. 또 무대 위에 있는 사람들뿐만 아니라 관객들도 같이 호흡하고, 내 감정에 맞춰서 같이 울고 웃는 순간들이 느껴져서 끝냈을 때의 희열이 엄청나요. 매체와 무대의 매력은 완전히 다르고, 무대만 해야겠다고 생각하는 건 아니지만 이 매력이 너무 좋아서 무대는 평생 할 것 같아요.”
이번 작품에서 그가 연기한 세훈은 해진에게 팬레터를 보내지만, 실제 그는 해진처럼 팬레터를 받는 입장에 있다. 원태민은 작품의 대표 넘버인 ‘해진의 편지’의 가사를 인용해 팬들에게 감사를 전했다.
‘너의 말들로 그때 내가 버티었다’라는 가사처럼 제 공연과 저라는 사람을 보고 일상에 큰 힘이 되는 좋은 에너지를 받아서 고맙다는 말을 들을 때 해진 선생님의 마음을 이해할 수 있었어요. 사랑을 받는 것만으로도 너무 감사한데 제가 그분들한테도 좋은 에너지가 된다는 점이 정말 좋죠. 사람마다 정말 힘든 순간들이 있는데, 그럴 때 공연을 통해서 다시 이겨내고 힘낼 수 있는 마음을 가질 수 있게 해준다는 게 배우로서 너무 좋은 일이라고 생각해요.”
신년을 맞이하는 마음가짐에 관해 묻자, 원태민은 “초심을 잃지 않고 주어진 것에 감사하며 열심히 최선을 다하는 것”이라고 답했다. 그는 올해도 한결같은 마음가짐으로 관객들을 만나 무대에 대한 열정을 꽃피워갈 예정이다.
“같은 공연을 몇십 번씩 하지만 매 무대 진심과 최선을 다하려 하고 있어요. 누군가에게는 이 공연의 3시간이 인생에서 특별한 순간일 수도 있으니까요. 그분들에게 저는 매번 처음 공연하는 것처럼 에너지를 주고, 마음을 다하며 최선을 다하는 모습을 보여주자는 생각을 계속하고 있어요. 지금 제가 갖고 있는 생각으로 꾸준히 하다 보면 완만하게라도 조금씩 발전할 것이라는 확신이 들어서 계속 위쪽으로 한발씩 올라가고 싶습니다.”
한편 ‘팬레터’ 10주년 기념 공연은 오는 22일까지 서울 예술의전당 CJ 토월극장에서 공연된다. 이후 3월17일~6월7일 서울 홍익대 대학로 아트센터 대극장에서 앵콜 공연이 이어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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