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웡카’ 정정훈 “'한국인 촬영 감독' 아닌 '촬영 감독'으로 받는 평가가 좋다”

임가을 기자 / 기사승인 : 2024-01-25 15:05:26

[스포츠W 임가을 기자] “‘한국인 촬영감독’으로서 받는 평가는 별로 반갑지 않다. 저도 촬영감독이기 때문에 어느 영화에 참여했을 때 단순히 ‘촬영감독’으로서의 평가를 받는 게 좋다.”

 

정정훈 촬영감독이 촬영을 주도한 ‘웡카’는 가진 것은 달콤한 꿈과 낡은 모자뿐인 ‘윌리 웡카’가 세계 최고의 초콜릿 메이커가 되기까지의 여정을 그린 영화로, 티모시 샬라메가 주연을 맡고 휴 그랜트 등이 출연해 개봉 전부터 관심을 끌었다.


지난 23일 국내 언론들과 화상 인터뷰를 진행한 정정훈 촬영감독은 영화 ‘웡카’의 제작 과정과 촬영에 대한 비하인드, 최근 그의 커리어에 대해 이야기하는 시간을 가졌다.

 

▲ 사진=워너브러더스 코리아

 

‘웡카’는 전편이 영국 아카데미 시상식 최우수 영국 영화 및 각색상 후보에 오른 ‘패딩턴’ 시리즈로 유명한 폴 킹 감독이 메가폰을 잡았다. 폴 킹 감독과는 이전에도 다른 작품을 위해 이야기를 나눈 바 있다고 밝힌 정정훈 촬영감독은 폴 킹 감독과의 소통은 전혀 어려운 게 없었다고 말했다.

“작품에 대한 생각들 중 많은 부분들이 일치했다. 특별히 조율하는 시간이 없어서 좋았던 것 같고, 폴킹 감독이 원하는 것에 저의 제안을 더해서 현장에서 아이디어를 바꾸기도 했다. 웡카의 방에서 좋은 아이디어가 떠올랐을 때 머리 위 조명등이 같이 켜지는 걸 제안했었는데 감독이 선택해줘서 영화에 담길 수 있었다. (감독과의) 조합은 잘 맞았던 것 같고, 재미있게 끝 마칠 수 있었다.”

소설 ‘찰리와 초콜릿 공장’을 원작으로 하는 영화로 가장 대표적인 작품은 팀 버튼 감독의 ‘찰리와 초콜릿 공장’(2005)이지만, 정정훈 촬영감독은 ‘윌리 웡카와 초콜릿 공장’(1971)에서 진 와일더가 연기한 윌리 웡카를 좋아한다고 말했다. 전작을 참고만 했을 뿐, 영감을 얻은 건 없다고 전한 그는 ‘찰리와 초콜릿 공장’과 ‘웡카’가 영상적으로 서로 매치되거나 연관성이 있지는 않다고 말했다.

“저에게는 기존의 다른 영화 속 윌리 웡카는 기괴한 느낌이 있었다. 하지만 이번 ‘웡카’에서 웡카는 나이자 우리 주변의 친구, 또는 가족이었던 것 같다. 그런 모든 하나하나의 감정들이 관객들하고 자연스럽게 접속이 됐으면 좋겠다고 생각했다.”

 

▲ 정정훈 촬영감독 [사진=워너브러더스 코리아]

동심을 구현한 듯한 시각적 경험을 선사하는 영화이지만, 정정훈 촬영감독은 오히려 판타지에 치중하는것보다는 현실과 적절히 균형을 맞추는 것을 목표로 했다고 말한다. 관객들이 ‘웡카’의 이야기를 믿을 수 있게 만드는 것, 동화될 수 있도록 하는 것이 그의 궁극적인 목표였다.

“사실적으로 찍으려 많이 노력했다. 판타지스럽거나 뮤지컬적인 장면들에 과하게 카메라나 조명을 쓰면 관객들이 집중하지 못하고 현란함에 정신이 산만해지는 경우가 생긴다. 그래서 제가 원하고자 하는 것들을 표현하면서도 자연스럽게 관객들이 시각적으로 즐길 수 있도록 했다.”

‘웡카’는 ‘찰리와 초콜릿 공장’(2005)과 마찬가지로 노래와 춤의 비중이 높다. 때문에 어떻게 본다면 뮤지컬 장르의 영화라 볼 수 있지만 정정훈 촬영감독은 ‘웡카’를 단순한 뮤지컬 영화로 정의내리지는 않았다. 그는 “드라마가 주가 되고, 그 드라마 안에서 노래를 같이 하는 부분들이 있을 뿐이지 다른 뮤지컬 영화처럼 곳곳에 노래를 해야만 하는 영화는 아니다.”라며 설명했다.

그럼에도 삽입곡의 완성도가 높은 만큼 현장에서 함께한 정정훈 촬영감독도 중독적인 노래의 마수에서 벗어날 수는 없었다. 그는 “촬영하고 숙소로 돌아오면 밤새 그 노래가 맴돈다. 그래서 제가 집에서 전날 찍었던 장면의 노래를 흥얼거리는 걸 보고 촬영 현장에 같이 와있지 않았는데도 가족들이 따라 했었던게 재미있었다.”며 웃어보이기도 했다.

 

 

▲ 사진=워너브러더스 코리아

 

꿈과 웃음이 함께했던 촬영 현장이지만, 뛰어난 결과물을 뽑아내기 위해서는 고난 역시 함께 따라오는 것이 당연하다. ‘웡카’는 세트 촬영과 로케이션 촬영을 모두 차용했는데, 옥스포드 지역을 배경으로 한 만큼 야외 로케이션에 있어 영국의 변덕스러운 날씨는 촬영의 가장 큰 골칫거리였다.

“날씨 때문에 굉장히 힘들었다. 영국이 날씨가 변화무쌍하다. 아침에 구름이 끼고 비가 내렸다가 시간이 지나면 해가 쨍쨍 나기도 한다. 영화를 자세히 보시면 하나의 장면 안에서도 이런 경우를 여러 번 볼 수 있다. 날씨를 완벽히 조율하지 못하니까 어떻게하면 부드럽게 넘어갈 수 있을지 고민했다.”

‘웡카’의 타이틀롤을 맡은 티모시 샬라메는 현재 세계에서 가장 바쁘게 일을 하고 있는 톱배우라 해도 과언이 아니다. 그와 함께 작업하게 된 정정훈 촬영감독은 현장에서 ‘이 사람이 그렇게 핫한 배우인가?’라는 의문을 가지기도 했다고 말했다.

“티모시 샬라메는 성실하게 작품에 임했다. 현장에서 일을 하는 걸로만 보면 대스타보다는 잘 아는 동생, 자기 일을 열심히 하는 배우라는 느낌이 더 들었다. 잘생긴 것도 있지만 이래서 모두가 좋아하는 배우가 될 수 있구나라는 생각을 많이 했다.”

 

▲ 사진=워너브러더스 코리아


정정훈 촬영감독이 직접 꼽은 명장면에도 티모시 샬라메가 등장한다. 그는 ”초콜릿 가게를 오픈하기 전 ‘웡카’의 측면샷이 있다. 깜깜한 상태에서 티모시 샬라메의 얼굴 윤곽만 보이는 장면이 가장 좋았다. 장면을 촬영할 때 인위적으로 만들기 보다는 카메라 내에 담겨주길 원했다. 그래서 조명을 조금씩 돌려가며 측면 샷을 손수 만들었던 게 가장 기억에 남는다.”고 전했다.

영국을 대표하는 배우 휴 그랜트는 이번 영화에서 소인족 움파룸파로 파격적인 변신을 꾀했고, 티모시 샬라메와의 뛰어난 케미스트리로 웃음을 줬다. 정정훈 촬영감독은 티모시 샬라메와 휴 그랜트는 촬영 현장에서도 유쾌한 호흡을 보여줬다고 말했다.

“영화에서는 한 화면 안에 같이 등장하지만 촬영을 할 때는 티모시 샬라메가 조그마한 움파룸파 모형을 보면서 대사를 했고, 카메라 옆에서 휴그랜트가 대사를 맞춰줬다. 촬영 현장에서도 완성된 영화의 움파룸파와 윌리 웡카를 보는 것 같았다. 찍으면서도 즐거웠고, 감탄했던 지점이 있었다. 리허설 때부터 스태프들도 다 재밌어 할 정도로 케미가 잘 맞아 떨어졌던 것 같다.”

‘올드보이’(2003), ‘신세계’(2013) 등을 통해 활약한 후 ‘스토커’(2013)로 미국 영화계에 진출한 정정훈 촬영감독은 ‘그것’(2017), ‘라스트 나잇 인 소호’(2021), ‘언차티드’(2022) 등에 참여해 헐리우드에서 입지를 넓혔고, 지난 해 미국촬영감독협회(ASC)의 정회원이 돼 화제를 모으기도 했다.

“미국촬영감독협회는 말 그대로 미국에서 활동하는 촬영감독들의 협회다. 일정 수 이상의 작품을 해야 하고, 3명 이상의 추천을 받아야한다. 협회의 회원이 된다고 해서 달라지는건 없다. 내야되는 회비가 좀 많아진거다. 하지만 이방인으로서의 촬영 감독이 아니라 미국에서 일하는 미국 내 촬영 감독 중 한 명으로 평가받았다는 것에 대해 큰 의미가 있다. 업무 환경이나 조건들은 달라지지 않는다. 다만 슬레이트에 적힌 제 이름 옆에 ASC라는 마크가 붙는다.”

 

▲ 사진=워너브러더스 코리아

 

그가 미국에서 활동한지 어느덧 10년이 지난 현 시점에서, 정정훈 촬영감독은 요즘 들어 다른 감독들과 동등한 입장에서 경쟁을 하고 있는 위치에 올라 만족스럽다고 말하기도 했다.

“‘한국인 촬영감독’으로서 받는 평가는 별로 반갑지 않다. 저도 촬영감독이기 때문에 어느 영화에 참여했을 때 단순히 ‘촬영 감독’으로서의 평가를 받는 게 좋다. 이런 면에서 이번 영화는 순수히 촬영 감독의 능력에 대해 평가를 많이 해 주신 것 같아서 그런 부분이 좋다.”

헐리우드 진출 직후 때와 지금을 비교했을 때 언어나 소통적인 부분에서의 어려움이 완화됐는지에 대한 질문에는 “일을 하는데 있어 가고자 하는 방향이 같으면 언어는 상관이 없다.”며, “하지만 그 안에서 의견이 다를 때는 서로 언어부터 이해하지 못하기 때문에 되도록이면 어떤 영화가 들어왔을 때 영화 자체에 대해서 이해하고 이야기를 자체를 제 것으로 만드려고 노력을 많이 하는 편”이라고 답하기도 했다.

현재 한국영화는 극장과 OTT 플랫폼에서 고평가 받으며 많은 인기를 끌고 있다. 정정훈 촬영감독 역시 이에 대해 체감한다 말하며 “‘오징어 게임’, ‘기생충’ 같은 작품들을 저보다 먼저 보고, 제가 모르는 한국 영화도 재미있었다고 얘기하는 경우들도 많았다. 그런 빈도가 점점 잦아지니까 미국으로 처음 넘어왔을 때보다 한국 영화의 인기가 올라가고 있다는 걸 느낄 수 있다. 다양한 이야기거리, 디테일이 좋은 영화가 한국에 많은 것 같다.”고 평했다.

 

또, 정정훈 촬영감독은 앞으로 한국 작품에 참여할 계획에 대한 질문에는 “국가에 상관없이 좋은 작품이 있으면 참여하고 싶다”며, “하지만 현재 가족들이 있는 곳이 미국이고, 미국에 좀 더 많은 작업이 있다보니 이왕 칼을 뽑은 거 헐리우드에서 좀 더 좋은 평가를 받고 남들이 봤을 때 부러울 정도로 해봤음 좋겠다는 바램이 있다. 중간중간 한국영화도 하고싶다. 특별히 좋아하는 감독과 작업을 한다기보다는 다양한 작품을 하고 싶다.”고 생각을 밝혔다.

 

▲ 사진=워너브러더스 코리아

정정훈 촬영감독의 차기작은 아직 정해지지 않았지만, 희망하는 다음 작업으로는 본인이 가진 장점을 더 많이 발휘할 수 있고, 흥행보다는 영화적으로 평가받는 작품을 하고 싶다 말했다.

“애초에 촬영보다는 연출, 배우 쪽을 공부했었다. 그런 이유로 저는 보편적인 촬영감독보다 조금 더 드라마를 이해할 수 있는 촬영감독이라 생각한다. 때문에 촬영만 하는게 아니라 연출적인 아이디어도 같이 얘기할 수 있는 작품이 제 장점을 발휘할 수 있는 작품이라 생각한다.”

인터뷰 중 아직도 공부하고 있는 입장이라 여러 번 말한 정정훈 촬영감독은 영화인을 꿈꾸고 있는 이들에게도 격려의 메시지를 남겼다. “촬영만 보지 말고 여러 가지를 넓게 공부하면 촬영하는 데 반드시 도움이 될 것같다. 무모한 꿈이라는 건 없으니 본인들이 생각하는 꿈이 있으면 시도해 보시면 좋겠고, 저처럼 언어 때문에 고생하지 마시고 젊을 때 틈틈히 언어에도 신경 쓰면 많은 사람들과 일할 때 수월하지 않을까 싶다.”

한편, 정정훈 촬영감독이 참여한 영화 ‘웡카’는 오는 31일 개봉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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