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WTV 스포츠W 임가을 기자] ‘시지프스’는 알베르 카뮈의 ‘이방인’을 그리스신화 ‘시지프스’와 엮어 뮤지컬적으로 풀어낸 작품으로 희망이라곤 전혀 남아 있지 않은 무너져 버린 세상 속 버려진 네 명의 배우들의 이야기를 그린다. 추정화 작·연출, 허수현 작곡 등의 창작진이 참여했으며 제18회 대구국제뮤지컬페스티벌(DIMF)에서 3관왕을 달성한 바 있다.
SWTV는 최근 서울 종로구 소재의 과수원뮤지컬컴퍼니 사옥에서 뮤지컬 ‘시지프스’의 ‘언노운’ 역으로 출연 중인 조환지와 작품에 대해 이야기하는 시간을 가졌다.
조환지는 이번 ‘시지프스’를 통해 오랜만에 대학로에 복귀했다. 정확히 1140일 만의 복귀라는 걸 팬분들이 손수 세줬다고 말한 그는 군 제대 후 대극장 두 작품을 하면서 관객들과 가까이서 연기하는 맛을 잊고 살았던 것 같다며 근황을 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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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사진=제이플로엔터테인먼트 |
“공연 자체가 관객과 함께 만들어 가는 것이긴 하지만, 대극장에서는 거의 소통이 없고 가장 앞열도 멀리 있어서 잘 보이지 않거든요. 근데 대학로에 와서 관객들에게 에너지를 받으면서 하는 작품을 하니까 ‘아 그래 이 맛이었지, 이런 행복이었지’ 같은 생각으로 행복하게 공연하고 있어요.”
‘시지프스’의 대본을 처음 봤을 때부터 술술 읽혔다고 말한 그는 그 이유를 ‘배우들의 이야기’라는 점에서 찾았다. 조환지는 “배우들의 이야기였기 때문에 많은 분석을 거치고 정보를 찾아서 이해할 필요 없이 자연스레 공감되고, 마음이 갔다”며 작품의 첫 인상을 전했다.
“요즘 세상이 시끄럽잖아요. 그걸 보고 있으면 ‘내일이 있을까’라는 생각도 가끔 드는데, 그런 생각을 하던 도중에 받은 대본이에요. 몇 달 뒤에 우리의 이야기가 이럴 수도 있겠구나 싶은 생각이 들었죠. 저 말고 다른 배우들도 분명 그랬을 것 같아요. 한마디마다 큰 분석을 하지 않아도 우리가 살아왔던 삶으로서 충분히 느끼고 칠 수 있는 대사들이에요.”
이어지는 가정으로, 만약 ‘시지프스’ 속 세상처럼 배우로서 연기를 하지 못하게 되었을 때를 상상한다면 어떨 것 같냐는 물음에는 “상상하고 싶지 않다”며, “‘시지프스’ 속 배우들처럼 작품을 하자고는 못할 것 같다”는 답변이 돌아왔다. 그리고 이러한 상황을 간접적으로 경험할 수 있었던 팬데믹 사태에 대한 그의 경험담도 함께 들을 수 있었다.
“코로나 사태가 처음 터졌을 때 ‘세자전’이라는 작품을 하고 있었어요. 공연 전체가 셧다운됐죠. 이제 뭘 하면서 먹고 살지 생각해 봤는데, 할 수 있는 게 없는 거예요. 관객이 없고 무대가 없으니까 내가 진짜 무능하구나, 그냥 바보구나 같은 생각이 들어서 충격을 받았었죠. 정말 힘들게 공연했었는데 지금 마스크를 벗고 커튼콜 때 다 같이 떼창을 하는 모습들을 보면 정말 너무 감사해요. 당시 마스크를 두세 겹 끼시고 객석에 앉아서 끝까지 지켜봐 주셨던 분들을 잊지 말아야 할 것 같아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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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사진=과수원뮤지컬컴퍼니 |
극의 제목인 ‘시지프스’는 신들을 기만한 죄로 산 정상으로 바위를 밀어 올리고, 정상에 도착하면 다시 아래로 떨어지는 돌을 다시 밀어 올리는 무한한 형벌을 받는 그리스 신화 속 인물이다.
이는 배우들의 삶과 비슷해 보이기도 한다. 매 공연 돌을 굴리고, 공연이 끝나면 또 다시 떨어진 돌을 다음 공연에서 밀어 올린다. 이러한 반복되는 작업에 대해 조환지는 탈력감보다는 재미를 느낀다고 전했다.
“배우들은 늘 돌을 굴리지만, 매 공연 또 다른 돌들을 굴리잖아요. 한 사람이 같은 작품을 연기한다 해도 그 사람이 성장하고 달라지기 때문에 느낌은 분명히 다를 거로 생각해요. 초연이 끝나면 사라지고, 재연이 언제 올지 모른다 해도 초연 때 굴려놨던 돌은 기억의 도서관에 저장되어 있으니까. 언젠가 그 돌을 다시 꺼내서 굴렸을 때 새롭게 달라진 제가 굴리면 재미있는 모습들이 나오지 않을까 싶어요.”
배우가 되기 전 드럼, 기타, 베이스, 피아노와 같은 많은 악기를 배우고, 가수의 꿈을 꾸다 연기자로 방향을 바꾼 조환지는 다양한 돌을 굴릴 수 있는 자신의 직업이 천직이라 말했다.
“꿈이 많이 바뀐 것처럼 하나에 금방 질리는 성격이라, 과연 이 배우라는 직업도 계속할 수 있을까 하는 고민이 있었어요. 근데 늘 제가 연기하는 캐릭터들이 바뀌잖아요. 그리고 연습과 공연 기간에는 조환지로 사는 인생이 아니고, 배역으로서 살아가기 때문에 제 자신에게도 영향을 많이 줘요. 다양한 배역들을 만나면서 조환지라는 사람이 변화하는 거죠. 그래서 이렇게 늘 다양한 돌을 굴리는 배우라는 직업이 저에게 알맞은 직업인 것 같아요.”
이번 작품에서 그가 맡은 역할은 ‘언노운’으로, 극중극 속 ‘뫼르소’ 역할을 함께 맡아 러닝타임 내내 쉴 틈 없이 작품을 이끌어나가는 주역이다. 조환지는 “다른 분들이 쉬는 구간에 저는 계속 존재하거든요. 근데 제가 만약 실수하거나 텐션이 떨어지면 분명 관객들이 끌고 가고 있는 에너지를 끊어버릴 수 있는 방해 요소가 될 수도 있으니까, 항상 그 끈을 놓지 않으려고 신경 쓰는 것 같아요”라며 배역을 소화하는데 있어 중점을 두는 부분을 설명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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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사진=과수원뮤지컬컴퍼니 |
“언노운은 그냥 저로서 재미있게 하면 되는데, 뫼르소라는 캐릭터가 정말 어려워요. 소시오패스도 아니고, 아무것도 안 하는 것처럼 보여도 속으로는 돌고 있는 캐릭터거든요. 모든 걸 느끼고 있지만 삶에 의미 없이 그냥 살고 있어서 눈치 보지 않는 것뿐이에요. 자기중심적이고 제 마음대로 행동하는 아기 같은 존재죠. 무언가를 하려고 하지 않고 말 그대로 무대 위에 ‘존재하기만 한다’고 접근한 게 처음이라 굉장히 어려웠는데 그래서 언노운으로 돌아왔을 때 재미있게 체인지되는 장점이 있었던 것 같아요.”
극 후반부, 뫼르소의 폭발적인 에너지가 돋보이는 독백 장면은 작품의 하이라이트 장면으로 꼽힌다. 그는 이 정도로 힘을 준 독백 연기를 선보인 건 ‘루드윅’과 ‘블루레인’ 이후 처음이라고 밝히며, 그 중에서도 ‘시지프스’의 독백 연기만이 가진 특이점에 대해 설명했다.
“‘블루레인’ 이후 오랜만이라 힘들었던 것 같아요. 그리고 ‘블루레인’ 때는 단순히 억눌렀던 감정, 억울함을 폭발만 시키면 됐었는데 ‘시지프스’는 거기서 몇 단계 더 나아가서 나에 대한 답답함에서 깨달음으로 변해가는 과정을 표현해야 했어요. 단순히 폭발만 해버리면 관객들이 뜬금없다고 생각할 수 있는 장면이니까요. 아 다르고 어 다른 그 차이가 힘들었죠. 이런 표현을 해본 것 자체가 처음이었던 것 같아요.”
언노운 역을 맡은 배우가 주축이 되어 흘러가는 작품은 맞지만, 그럼에도 무대에는 4명의 배우가 올라있다. 이들의 유기적인 호흡으로 이뤄진 ‘시지프스’에 대해 조환지는 “바톤 터치가 잘 되어야지 재밌는 극”이라며 작품의 매력을 말했다.
“사실 언노운이 혼자 이끄는 건 맨 마지막뿐이에요. 그 장면까지 가기 위해 모든 배우가 이어달리기를 잘해야 하죠. 마지막 순서에 바톤을 받아 결승선에 들어오고, 패스를 받아서 골을 넣는 것처럼 앞의 구간이 톱니바퀴처럼 잘 맞아떨어져야지 마지막 독백 장면이 빛나는 것 같아요.”
언노운과 함께 호흡을 맞추는 포엣, 클라운, 아스트로 역을 맡아 하는 배우들에게 조환지는 “첫 공 때부터 너무 감사했다”면서 1월 1일부터 지금까지 함께 달려온 동료들에 대한 마음을 전하기도 했다.
“첫 공 때 첫 넘버가 끝나고 박수를 받는데 옆을 보니까 다들 뽀송하고 저만 땀으로 온몸이 젖어있었어요. 원래 땀이 많은 편이지만, 긴장하면 더 땀이 많이 나거든요. 비비크림이 섞인 땀이 눈에 들어가서 거의 눈을 못 뜰 정도였죠. 그때 같이 무대에 선 배우들이 제가 빠른 것 같으면 눌러주고, 느린 것 같으면 끌어주셨어요. 먼저 돌을 굴렸던 사람들이 저만의 돌을 굴릴 수 있게 같이 잘 도와주신 것 같아서 지금도 많이 의지하면서 하고 있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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