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월17∼26일 전시 …한세기를 관통한 작가들의 정신과 철학 후대에 전해
[SWTV 박종진 기자] 국내 화단을 대표하는 80대, 90대 원로 화백 7인의 구상회화 전시가 서울 종로 장은선갤러리에서 17일부터 이달 26일까지 열린다. 구자승·김인화·김일해·안승완·이병석·이종환·최예태 화백은 각기 다른 조형 언어와 예술 세계를 구축해온 작가들로, 이번 전시는 한국 현대 구상회화의 흐름과 미학적 가치를 깊이 조망할 수 있다. 특히 세 명의 작가가 구순(90세)을 맞이한 시점에서 열리는 전시는 한국 회화사의 살아 있는 기록이자 세대를 잇는 미술문화의 증언이라 할 수 있다.

구자승 - 정물에 담긴 동양적 사유와 침묵의 미학
구자승 화백은 한국 구상회화계에서 사실주의와 동양적 정신성을 결합한 대표 작가다. 구 화백의 정물화는 단순히 사물을 묘사하는 데 머물지 않는다. 화면 속 조각상, 항아리, 과일, 꽃 등의 오브제는 하나의 존재론적 상징으로 기능하며 시간과 기억, 삶의 본질에 대한 사색을 이끌어낸다.
그의 작품에는 불필요한 요소가 철저히 제거돼 있다. 절제된 구도와 고요한 색채, 여백의 활용은 마치 동양 수묵화가 지닌 정신성을 서양 유화의 재료로 구현한 듯한 인상을 준다. 이번 전시에 출품된 '박스 위의 정물'과 '조각이 있는 정물' 역시 사물들이 놓인 공간을 단순한 배경이 아닌 사유의 공간으로 전환시킨다.
구자승 회화의 핵심은 '보이는 것을 넘어 존재의 본질을 바라보는 시선'이다. 그는 급변하는 미술사조 속에서도 유행을 좇지 않고 묵묵히 사실주의의 길을 걸으며 한국 정물화의 품격을 높여왔다. 그의 작품은 정지된 순간 속에서 오히려 영원성을 발견하게 만드는 힘을 지닌다.
김인화 - 생명의 숭고함을 그리는 영혼의 풍경화가

김인화 화백의 작품세계는 자연에 대한 경외와 생명에 대한 깊은 성찰에서 출발한다. 그가 즐겨 다루는 연꽃과 히말라야는 단순한 자연 풍경이 아니라 정신적 이상향과 영적 세계를 상징한다.
연꽃은 진흙 속에서도 맑은 꽃을 피우는 존재로 인간 정신의 순수성을 의미하며, 히말라야는 인간을 초월하는 절대적 자연과 숭고미를 상징한다. 김 화백은 이러한 소재를 사실적으로 묘사하면서도 화면 전체에 명상적 분위기를 부여한다.
그의 작품은 화려함보다 맑음에 가깝다. 자연의 색채를 재현하면서도 현실을 넘어선 정신적 공간을 창조한다. 이는 단순한 풍경화가 아닌 '영혼의 풍경화'라고 부를 만하다.
김일해 - 꽃과 여인으로 노래하는 생명의 찬가

김일해 화백은 꽃과 여인, 풍경을 통해 인간 삶의 아름다움과 생명력을 표현해왔다. 그의 작품은 강렬한 색채와 풍부한 감성으로 관람객에게 친근하게 다가간다. 특히 꽃 연작은 단순한 식물 묘사가 아니라 생명의 환희와 희망을 상징한다. 붉은 모란과 들꽃은 생명의 에너지와 인간 내면의 정서를 대변하며 화면을 가득 채운다.
김 화백의 회화는 현실의 고통과 갈등보다 삶의 긍정성과 아름다움에 주목한다. 꽃은 피고 지지만 다시 피어난다. 이러한 순환의 원리는 그의 작품 전체를 관통하는 주제이며, 인간 삶에 대한 따뜻한 시선을 담고 있다. 김 화백은 한국 화단에서 색채의 서정성과 생명미를 가장 꾸준하게 탐구한 작가 중 한 사람으로 평가받는다.
안승완 - 빛과 계절을 포착하는 자연의 시인

안승완 화백은 자연이 만들어내는 순간의 빛과 색을 섬세하게 포착하는 풍경화가다. 그의 작품은 인상주의적 감수성과 사실주의적 관찰력이 결합된 독특한 세계를 보여준다.
연못 위 수련, 물속을 헤엄치는 잉어, 계절에 따라 변화하는 풍경은 모두 자연이 지닌 생명력과 순환성을 상징한다. 그는 자연을 단순한 대상이 아닌 살아 숨 쉬는 존재로 바라본다. 특히 물과 빛의 표현은 안 화백 회화의 핵심이다. 반사되는 빛과 흔들리는 수면, 변화하는 공기의 흐름이 섬세한 붓질 속에서 생동감 있게 구현된다.
안 화백의 그림은 화려한 극적 장면보다 일상 속 자연의 아름다움에 주목한다. 이는 현대인이 잃어버린 자연과의 교감을 회복하게 하는 힘을 지닌다. 그의 회화는 자연을 향한 따뜻한 애정과 관찰의 기록이며, 한국 자연주의 풍경화의 중요한 계보를 형성한다.
이병석 - 자연과 인간 내면을 연결하는 환상적 서사

이병석 화백은 자연을 단순한 풍경으로 보지 않는다. 그의 화면 속 자연은 인간의 감정과 기억, 희망과 슬픔이 투영된 심리적 공간이다.
작품 '바람이 머무는 곳' 시리즈에서 볼 수 있듯이 그는 산과 들, 나무와 하늘을 현실 그대로 재현하기보다 상징적이고 초현실적인 이미지로 재구성한다. 자연은 곧 인간의 내면을 비추는 거울이 된다. 강렬하면서도 환상적인 색채, 자유로운 화면 구성은 관람객을 현실과 상상의 경계로 이끈다. 이러한 특징은 한국 구상회화가 단순 재현을 넘어 표현적 영역으로 확장되는 과정을 보여준다.
이병석 화백은 자연과 인간 감정의 관계를 끊임없이 탐구해 온 작가다. 그의 작품은 현실과 꿈, 기억과 상상이 공존하는 서정적 공간을 창조하며 한국 현대 구상회화의 표현 영역을 넓혀온 중요한 사례로 평가된다.
이종환 - 풍경을 통해 기억을 그리는 낭만주의자

이종환 화백은 풍경을 단순히 보는 것이 아니라 기억하고 해석하는 작가다. 호주 본다이 비치, 포르투갈 카스카이스 해변 등 세계 여러 지역의 풍경은 그의 손을 거치며 하나의 정서적 공간으로 변모한다.
그는 사실적 재현을 바탕으로 하면서도 풍경 속에 자신의 감정을 녹여낸다. 바다와 하늘, 빛과 구름은 실제 장소의 기록인 동시에 작가의 내면 풍경이 된다.
이 화백 작품은 여행의 기록이 아니라 기억의 기록에 가깝다. 장소에 대한 인상과 감정을 화폭에 재구성함으로써 풍경에 서정성과 낭만성을 부여한다. 그의 회화는 한국 풍경화가 사실주의에서 감성적 풍경화로 발전하는 과정을 보여준다. 자연과 인간 감성의 만남이라는 측면에서 그는 한국 낭만주의 풍경화의 중요한 위치를 차지한다.
최예태 - 산을 추상화한 색채의 건축가

최예태 화백은 산을 소재로 독창적인 회화 언어를 구축한 작가다. 그의 산은 실제 자연을 묘사하면서도 단순한 풍경이 아니라 색과 면, 리듬의 조형적 구조로 재탄생한다. 특히 강렬한 보색 대비와 기하학적 화면 구성은 산을 하나의 조형적 건축물처럼 보이게 만든다. 자연을 해체하고 재구성하는 과정에서 그는 자신만의 독창적 회화 문법을 확립했다.
북한산 백운대를 비롯한 한국의 산들은 그의 작품에서 단순한 경관을 넘어 민족적 정서와 자연의 생명력을 상징한다. 화면은 역동적이며 음악적 리듬감을 지닌다.
최 화백은 구상과 추상의 경계를 자유롭게 넘나들며 한국 산수의 현대적 가능성을 탐구해왔다. 그의 작업은 전통 산수정신과 현대 회화언어가 만나는 지점을 보여주는 중요한 사례다.
이번 '원로작가 7인 초대전'은 단순한 원로작가 그룹전 이상의 의미를 갖는다. 7인 화백은 한국전쟁 이후 한국 현대미술이 재건되던 시기부터 활동을 시작해 산업화와 민주화, 세계화를 거치며 한국 구상회화의 역사를 직접 만들어온 세대이다.
이들은 추상미술이 화단의 중심을 차지하던 시기에도 구상회화의 가치를 지켜냈으며, 사실주의·자연주의·서정주의·상징주의 등 다양한 방식으로 한국적 구상회화의 영역을 확장했다. 특히 자연과 인간, 생명과 시간, 기억과 사유를 화폭에 담아내며 한국 현대 구상회화의 정신적 기반을 구축한 주역들이다.
이번 전시는 단순히 과거를 회고하는 자리가 아니다. 세 명의 작가가 구순을 맞이한 지금도 여전히 현재진행형으로 창작을 이어가고 있다는 점에서 한국 미술의 지속성과 생명력을 보여준다. 동시에 급변하는 동시대 미술 환경 속에서 회화의 본질과 예술의 가치가 무엇인지를 다시 묻는 자리이기도 하다.
이번 전시는 한국 구상회화 70여 년의 역사를 압축적으로 보여주는 살아 있는 미술사이며, 한 세기를 관통한 예술가들의 정신과 철학을 후대에 전하는 뜻깊은 문화적 기록이라 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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