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몸과 마음 다 바쳐 도전” 원로배우 박근형, 67년 연기 인생 첫 소극장 데뷔

임가을 기자 / 기사승인 : 2025-08-20 08:26: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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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WTV 스포츠W 임가을 기자] 85세 원로배우 박근형의 첫 소극장 데뷔작 ‘고도를 기다리며를 기다리며’가 베일을 벗었다.


19일 오후 서울 종로구 소재의 예스24스테이지 3관에서 연극 ‘고도를 기다리며를 기다리며’의 기자간담회가 열렸다.

이날 자리에는 오경택 연출을 비롯해 박근형, 김병철, 이상윤, 최민호, 김가영, 신혜옥이 참석했다.

 

▲ (왼쪽부터) 오경택 연출, 박근형, 김병철, 이상윤, 최민호, 김가영, 신혜옥 [사진=파크컴퍼니]


‘고도를 기다리며를 기다리며’는 사무엘 베케트의 고전 희곡 ‘고도를 기다리며’를 오마주한 메타 코미디 연극으로, 미국 배우 겸 극작가 데이브 핸슨의 대표작이다. 2013년 뉴욕 국제 프린지 페스티벌에서 첫선을 보였고, 국내에서는 지난해 초연을 올렸다.

이 작품에 초연부터 참여한 오 연출은 “‘고도를 기다리며’라는 작품이 상징적이면서도 보편적인 인간에 관한 질문을 던진다면, ‘고도를 기다리며를 기다리며’는 ‘고도를 기다리며’의 현실판”이라면서, “대역 배우와 조감독이 각자의 고도를 기다리며 무대에 올라가기를 기다리는 이야기를 현실적이고 웃프게, 그리고 인간미 넘치게 그려내는 작품”이라고 소개했다.

최근 이 작품의 원작인 ‘고도를 기다리며’를 신구, 박근형과 함께 무대에 올려 약 2년 동안 139회 회차를 선보인 오 연출은 ‘고도를 기다리며’ 유니버스를 선보인 장본인이기도 하다. 그는 지난해부터 ‘고도를 기다리며’와 ‘고도를 기다리며를 기다리며’를 연달아 공연하며 무대 위와 아래를 이어서 비춘다.

이에 대해 오 연출은 “두 작품을 연달아서 올리면 작업하는 사람으로서 저한테도 의미가 있고, 관객분들도 재미있어하실 것 같았다”면서, “‘고도를 기다리며’가 재미있으셨던 분들은 이것도 재미있어하실 거고, ‘고도를 기다리며’를 못 보신 분들도 더 현실적인 우리들의 이야기, 가까운 이야기로 받아들여지지 않을까 하는 취지로 도전하게 됐다”고 말했다.

작품은 ‘고도를 기다리며’의 주인공인 에스트라공과 블라디미르의 언더스터디(대역 배우) ‘에스터’와 ‘밸’이 무대에 설 날을 기약 없이 기다리는 하루를 그린다.

 

이 중 에스트라공의 대역 배우인 에스터 역을 맡은 박근형은 “제가 자청해서 하겠다고 했다”고 밝히며 “배우는 수천 가지 역할이 있고, 생명이 있는 한 도전하는 것이 습성이다. 나이를 먹은 노년에도 어떤 역할이든지 하려고 하는데 너무 바쁘다. 시간이 얼마 남지 않았기 때문에 뭐든 다 도전해 보고 싶다”고 말했다.

 


“에스터는 실제 인물이다. 노년이고, 곧 사라져가는 앞날을 둔 노배우다. 어쩌면 저일 지도 모른다. 한 번도 무대에 서본 일 없이 대역으로 일생을 살면서 무대 위에 올라서기를 기다리는 사람, 사회에서 소외되어가는 그런 사람들의 마지막 심정을 얘기하고 싶었다. 제 딴에는 저와 비슷한 처지라 생각하고 몸과 마음 다 바쳐서 도전해 보고 싶어서 하게 됐다.”

 

 

▲ 박근형 [사진=연합뉴스]


2001년 연극으로 데뷔해 10년의 무명 시절을 거치고 [태양의 후예]부터 [도깨비], [SKY 캐슬] 등에 출연하며 많은 사랑을 받은 김병철은 9년 만에 연극 무대에 돌아와 박근형과 같은 역을 맡아 활약한다. 그는 “연출님과 연극 작품을 두 번 했었다. 그때가 너무 좋은 기억으로 남아있어서 제안해 주셨을 때 긍정적으로 생각을 하게 됐다”고 참여 계기를 밝혔다.

또 그는 “지상의 연습실에서 연습한 게 처음이었던 것 같다. 창밖 풍경이 너무 좋다. 북한산이 보인다”면서, “해가 들이치는 건 부담스럽지만, 풍경이 너무 좋아서 연습 즐겁게 해나가고 있다”며 열악했던 과거의 연습 환경을 회상하며 웃어보이기도 했다.


최민호는 블라디미르의 언더스터디인 ‘밸’ 역할을 맡아 활약한다. 지난해 이 작품의 초연을 통해 연극에 데뷔한 그는 재연 시즌의 유일한 경력직이다.

그는 “연습하는 과정에서 연습생 시절이 떠올랐다”면서, “언젠가 무대에 올라 많은 사람이 날 알아줬으면 좋겠고, 인기를 얻었으면 좋겠다고 생각했던 마음을 떠올렸다. 수많은 경험을 통해 나이가 들었지만, 다시 한번 어릴 때의 순수함에 다가가는 계기가 됐던 것 같다”고 말했다.

“이번 재연에서는 초연 때 제가 처음으로 그려냈던 캐릭터의 모습도 담고, 새로운 모습도 담아서 더 명확하고 많은 관객분이 쉽게 이해할 수 있는 밸을 표현하려 노력하고 있다. 초연 때는 처음이어서 몰랐던 부분들이 되게 많았던 것 같은데, 연습 과정을 한번 겪고 무대에 오르다 보니까 경험치가 쌓여서 연습할 때 머리 회전이 더 빠르게 되는 부분이 있는 것 같다. 더 많은 것들을 준비해 나가고 있는 과정인 것 같다.”

최민호와 같은 역할을 맡은 이상윤은 밸과의 닮은점을 언급하기도 했다. 그는 “감사하게도 방송 쪽에서 먼저 기회를 얻어서 활동했지만, 진짜 배우로서 인정을 받았는가에 대한 목마름이 있어서 무대 쪽으로 오게 됐다”면서, “아직도 그 부분에 대해서는 끊임없이 답을 찾으려 하고, 진정한 배우로 인정받기 위해 노력하고 있는 것 같다. 이게 무대에 올라가고 싶은 벨의 마음과 같지 않을까 싶다”고 말했다.

 

 

▲ 사진=파크컴퍼니


언더스터디처럼 연출을 꿈꾸고 있는 무대 조감독 ‘로라’ 역에 분한 김가영은 2017년 ‘에덴 미용실’ 이후 8년 만에 무대에 선다. 그는 “임신·출산하고 육아하다 보니 무대에 설 수가 없었다. 드라마 촬영만 계속하다가 작년부터 무대에 좋은 작품으로 서고 싶다는 생각에 오디션을 보다가 좋은 제안을 덥석 물었다. 연기를 하면서 언제 또 근형 선생님을 뵐 수 있겠나”라고 말하며 출연 계기를 밝혔다.

이어 그는 “무대에 선다는 것에 감사했다”면서, “무대라는 공간이 배우로서 얼마나 감사한 공간인지 알고 있어서 이번 공연을 참여하는 것 자체가 너무 큰 행운이고, 배우로서 다시 한번 생각할 수 있는 계기가 됐다”는 소회를 전했다.

같은 역을 맡은 신혜옥은 “처음에 대본 받고 웃고 울면서 순식간에 읽었다. 아무래도 제가 종사하고 있는 직종과 딱 맞는 이야기라 깊게 빠져들어서 봤던 것 같다”면서, “책으로 무언가를 너무 재밌게 보면 영화나 다른 매체로 대면했을 때 기대에 못 미치고 아쉬운 점들이 있지 않나. 대본을 너무 재밌게 봐서 연습할 때 괜찮을까 싶었는데 연습 첫날 리딩 때부터 너무 웃느라 대사를 제대로 못 읽고, 대본에 눈물 자국이 남았다”고 말했다.

원로 배우 박근형과 후배 배우들간의 연기 호흡에 대한 질문도 이어졌다. 연습실 현장에서의 박근형에 대해 오 연출은 “근형 선생님은 에너지가 넘치고 마음이 열정적이시다. 그게 연극의 생명”이라고 표현했다.

“선생님께서 상대방의 대사를 듣고 바로 반응하는 리액션들이 연기에서 중요한 것이라 말씀하신다. 내 연기만 보여주는 게 아니라, 살아있는 두 명의 인간이 무대 위에서 이야기하고 교감하는 게 중요하다고 늘 말씀해 주신다. 이런 선생님의 연기에 대한 열정과 후배에 대한 사랑, 그리고 연극에 대한 깊은 경외심이 후배들에게 귀감이 되고 있다.”

 

▲ 사진=연합뉴스

19살 무렵부터 연극계에 발을 들인 박근형은 이번 작품이 소극장 정식 데뷔 무대라고 밝혀 놀라움을 주기도 했다. 이처럼 한국 연극사와 함께 발맞춰 걸어온 그의 마음속에는 연극계에 대한 애정이 식지 않았다. 앞서 그는 청년 연극인을 위해 ‘고도를 기다리며’ 기부 공연을 신구와 함께 진행하기도 했다.

박근형은 “사회와 문화가 이렇게 발전되고 세계적으로 향상됐는데 대학로에 있는 젊은 연극인들은 아직도 제가 젊었을 때 겪었던 걸 그대로 겪고 있는 것 같다”면서, “이걸 깨뜨려야겠다는 생각으로 신구 선생님과 함께 기부 공연을 진행하게 됐다. 앞으로 생명이 다하는 날까지 계속해 나갈 것”이라는 계획을 전했다.

애정이 큰 만큼, 안타까움이 담긴 쓴소리도 함께했다. “다른 요소는 다 앞으로 나아가고 있는데, 배우 예술이라는 무대예술에서 배우들의 연기술이 상당히 정체되어있다. 이 부분을 젊은 사람들이 뚫고 나올 수 있게 하고 싶은 게 소망”이라며 꼬집은 박근형은 “저는 창작극에 배고파있다. 노벨문학상도 타고, 세계적으로 한국 문화가 널리 알려졌는데 희곡 문학이 없다”면서 한국 창작 희곡의 부재를 꼬집기도 했다.

오 연출도 이에 말을 보탰다. 그는 “우리의 IP라는 건 굉장히 중요하다. 얼마 전 기사를 봤는데 가장 가치를 많이 창출하는 원천 IP 50개 중 미국이 32개, 일본이 7개를 보유하고 있고 우리나라는 단 한 개도 없다고 하더라. 드라마 장르에서의 원천 IP는 희곡이라고 생각한다. 그런 의미에서 창작 희곡의 발전, 발굴과 지원이 중요하고 생각한다”고 말했다.

한편 ‘고도를 기다리며를 기다리며’는 오는 9월16일~11월16일, 예스24스테이지 3관에서 공연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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