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WTV 임가을 기자] 인터뷰①에서 이어집니다.
※ 본 인터뷰는 작품에 대한 주요 스포일러가 포함되어 있습니다.
스릴러 소설을 원작으로 하는 만큼 소설의 구절을 많이 가져온 파격적인 가사도 작품의 특징으로 꼽힌다. 연쇄 살인을 저지르는 유진의 심상을 표현한 넘버의 가사에는 피가 난무하지만, 이를 직접 소화하는 김려원과 김이후는 의외로 덤덤하게 받아들이는 모습을 보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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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사진=뷰티풀웨이 |
(김려원) “제 데뷔작이 ‘셜록홈즈2: 블러디 게임’이라 그때 가사가 훨씬 더 잔인했다고 느꼈어요. 연쇄 살인마 잭 더 리퍼 이야기를 다뤄서 피해자가 어떻게 죽어 있는지 상세하게 묘사한 게 많았죠. 특히 그때는 관찰자 입장에서 봤다면, 이번에는 내가 이 행동을 하면서 어떤 느낌이었는지를 이야기하는 거니까 잔인하다는 느낌보다는 그 순간의 감정이 더 오더라고요. 오히려 들으시는 분들이 잔인하다고 하니까 도로 이해가 됐던 것 같아요.”
(김이후) “책으로 봤을 때는 독자의 입장이니까 정말 한 장씩 손가락으로 집어서 ‘으아’하고 넘기면서 봤거든요. 근데 어쨌든 유진이라는 인물은 그 말을 뱉으면서 희열과 짜릿한 환희를 표현하고 있어서 제가 그 안으로 들어가니까 다르긴 하더라고요. 밖에서 보느냐, 아니면 그걸 행하고 느끼면서 말하고 있느냐에 따라서 다르긴 하지만 그래도 가사들이 쉽지는 않은 것 같아요. (웃음)”
뮤지컬로 새로 만들어진 ‘종의 기원’은 특이하다고 표현할 수 있을 만큼 틀을 깨는 면모를 보여주는 작품이다. 연습부터 공연까지 함께한 배우들은 작품이 지닌 스며드는 매력에 대해 말하기도 했다.
(김이후) “‘종의 기원’을 하면서 음악부터 안무까지 새로운 장르 같다고 느꼈어요. 우리가 익숙한 뮤지컬의 음악 진행과 안무와는 살짝 다르지만, 그것들이 묘하게 어우러지면서 특유의 분위기가 난다는 걸 연습실에서 연출님께 들었을 때는 좀 어려웠는데 런을 돌고 처음부터 끝까지 계속해서 하니까 어떤 말인지 알겠더라고요.”
(김려원) “드라마, 영화, 책은 소재와 장르가 다양한 작품들이 많은데 뮤지컬은 바로 눈앞에서 보는 공연이다 보니까 조금은 그렇지 못한 것 같아요. 근데 ‘종의 기원’은 우리가 늘 보던 형식에서 조금 벗어난 작품이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어요. 중소극장에서도 더 다양하고 실험적인 작품들이 많이 보였으면 좋겠고, 취향 따라 사랑도 받았으면 좋겠어요.”
소설과 뮤지컬이라는 두 형식이 지닌 가장 큰 차이는 음악의 유무라 할 수 있다. 배우들이 “연습 때 음악이 정말 사이코패스 같다는 생각을 많이 했다”고 표현한 만큼 ‘종의 기원’은 독특한 고유의 색채를 지닌 음악을 선보인다.
(김려원) “음이 널뛰고, 가사의 문장이 아직 안 끝났는데 마디는 먼저 끝나버리는 부분이 많거든요. 이런 곡이 많은 작품을 처음 해봐서 처음에 배울 때는 낯설고 왜 이런 형식으로 만들어진 건지 궁금했는데 하다 보니까 일반적이지 않은 느낌을 표현하려고 의도하신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그리고 이 음악들을 좋아하시는 관객분들을 보고 의도가 잘 전해졌다는 생각이 들었죠.”
(김이후) “‘여기는 치안이 좋지, 않은 신도시’처럼 보통 말할 때 끊는 부분하고 다르게 가사가 끊어지니까 좋다는 건 줄 알았는데 아닌 거예요. (웃음) 그래서 저도 처음에는 이 말이 어떻게 하면 잘 전달이 될지 신경을 많이 썼어요. 한 번 더 생각해야 들어오는 게 엄청 많아서 그게 의도인가 싶기도 해요. 계속해서 긴장을 놓지 못하고 보게 만드는 거죠.”
이러한 음악에 더해지는 안무는 작품만의 색을 배가시키는 요소이기도 하다. 이미지와 추상적인 표현에 초점을 맞췄다는 움직임은 정확한 특정 동작 대신 의도를 표현하는 것이 중요했고 안무를 직접 소화하는 배우들은 어려움을 겪었지만, 현재는 매력에 푹 빠진 상태다.
(김려원) “처음에는 어려웠어요. 다른 공연에서처럼 박자에 딱딱 맞춰서 배우는 것도 아니고, 어떤 부분은 가사를 직접적으로 표현하다가도 또 다른 부분은 가사에 맞지 않는 동작도 있었거든요. 그래서 제 스탠스를 드라마에 따른 연기에 맞춰야 할지, 음악에 따른 안무에 맞춰야 할지 의문이 많았죠. 그래서 저희가 안무를 다 익혔을 때 안무 감독님을 따로 모셔서 동작의 의미를 알아가면서 대화하고 배우는 과정을 한 번 더 가졌어요. 이후에 저희 셋이 호흡을 잘 맞추니까 이 안무가 너무 좋고 더 하고 싶더라고요. 원래 초연 때는 안무가 더 많았는데 하다 보니까 빠진 것이 많다고 하셔서 ‘더 주세요. 저희는 할 수 있어요’하고 어필하기도 했죠.”
(김이후) “안무 감독님이 넘버에서 말하고 있는 것들을 무용적으로 표현하셨어요. 안무 감독님이 원래 현대무용을 주로 하시는 분이고 뮤지컬은 ‘종의 기원’만 하셨거든요. 그래서 몸으로 이야기를 전달하는 쪽으로 접근하신 것 같고, 저희도 같은 방향성을 가졌죠. 대사가 똑같이 쓰여 있어도 배우마다 다르게 말하는 것처럼 안무도 어떤 느낌과 요구하시는 그림을 주시면 배우마다 자기가 표현하고자 하는 대로 할 수 있게 해 주셨죠. 지금은 공연하면서 몸에도 많이 익었고, 진행될수록 무대 위에서 체감되는 것까지 더해져서 안무는 이제 낯설지 않게 하고 있는 것 같아요.”
무대에서만 보여줄 수 있는 ‘종의 기원’의 매력 중 하나는 주인공 한유진이 두 배우로 표현이 된다는 점이다. 극 중 두 명의 유진은 싸우기도 하고, 한 사람처럼 굴기도 하며 다채로운 모습을 보인다.
(김이후) “듀엣을 할 때 노래를 부르고 안무를 하면서 넘버를 행하다보면 어느 순간에는 언니랑 한 사람처럼 움직이고, 또 어떤 순간에는 언니의 말이 귀에 들려서 말하게 돼요. 무대 위에 배우로서 존재하면서도 작용이 일어나게 되더라고요. 대사, 동선, 넘버에서 유진의 다른 두 모습이 다 대치하게 해 놓은 작품의 설정이 재밌는 것 같아요.”
(김려원) “실제 사람들이 그래서 2인 1역으로 표현한 거 아닐까 싶어요. 저도 맨날 양가감정이 들어서 스스로 싸우고, 제 모습을 외면하거든요.”
한유진은 두 배우로 표현되는 한편 장보람은 겉으로 보이는 한유진을 연기하는 김이후하고만 직접적으로 교류한다. 이에 대해 장보람은 배우로서 느끼는 흥미와 아쉬움을 전하기도 했다.
(장보람) “사람이 외적으로 웃고 있지만 속으로는 욕하고 있을 수도 있잖아요. 그런 것처럼 해진이는 유진이의 속마음을 알 수 없다는 게 재밌어요. 작품에서 이후 언니가 저를 웃으면서 보고 있는데, 려원 언니는 몸을 뒤집어서 저를 째려보고 있어요. 근데 저는 안 보이는 연기를 해야 하잖아요. 그럴 때 해진이가 아닌 배우 장보람으로서 ‘속마음이 저렇다고?’ 같은 생각이 들어요. 요즘 무대에서 려원 언니가 ‘어디 한번 얘기해 봐’라고 하는 것처럼 해진이를 점점 더 째려보는데, 거기에 반응할 수 없고 모른 척해야 하는 게 너무 아쉬워요. (웃음)”
연기를 위해 캐릭터와 동화될 필요가 있는 배우의 입장에서 사이코패스 범죄자 역을 소화한다는 건 쉬운 일이 아니다. 김려원과 김이후 역시 한유진이라는 캐릭터를 구축하는 데 많은 고민이 함께했고, 연습 과정을 거치면서 각자만의 해결법을 찾아냈다.
(김려원) “보통 어떤 캐릭터를 맡아서 연기를 하게 되면 이 캐릭터를 이해하고, 나라고 생각하면서 연기를 하게 되는데 유진이는 사이코패스인 걸 떠나서 범죄자라 그게 좀 어렵더라고요. 연기를 밋밋하고 객관적으로 할 수는 없잖아요. 그래서 어느 정도로 해야 극이 재밌으면서 동시에 제가 이 못된 악인을 이해시키려는 걸로 보이지 않으려나 싶어서 고민했었는데 이미 유진이가 누가 봐도 좋은 행동을 한 게 아니라서 과몰입 하고 스스로를 가엾게 여길수록 손가락질을 하게 되지, 동정하면서 넘어가는 일은 없어서 괜한 고민 했다고 느끼게 됐죠. 이걸 알고 나니까 좀 더 자유로워졌고 엄청 크게 배운 것 같아요.”
(김이후) “전 어떻게 보면 반대의 고민이에요. 이 캐릭터를 연기해야 하니까 이입해야 하고, 어떻게 생각했길래 이 말이 나오는 건지를 이해해야 하는데 그게 잘 안돼서 깨고 들어가는 게 힘들었어요. 근데 작품에서 유진이 해진이한테 나는 억울하고 피해자라고 말하는 장면을 연습하니까 앞에서 했던 모든 말들이 귀결되면서 느낌이 확 왔던 것 같아요. ‘아 얘는 진짜 이렇게 생각하는 나쁜 놈이구나. 정당화하는 이유를 만들어가면서 사는 뱀 같은 인물이구나’ 같은 생각이 들었던 순간부터 연기하기가 수월해졌죠.”
김해진의 시선으로 한유진을 보는 장보람도 이러한 말에 공감하며 한유진의 시점으로 진행되는 극이지만, 그럼에도 동정을 살 수 없는 인물인 지점에 대해 언급했다.
(장보람) “유진이가 자신의 상황을 설명하면서 이해시키려고 했다면 해진이는 이해했을 것 같았어요. 근데 언니들이 오히려 진짜 너무 괴롭고 힘들었다면서 왜 이해를 못 하냐고 감정적으로 하니까 더 화가 많이 나더라고요. 아마 관객분들도 그러지 않으셨을까요?”
(김려원) “맞아요. 정상적으로 이해가 가는 범위까지만 속상해했더니 그게 더 독이 되는 것 같더라고요. 정말 세상이 무너진 것처럼 과하게 괴로워하니까 오히려 보는 사람은 황당해지는 거죠. 만약 유진이가 다른 사람한테도 그렇게 몰입했다면 그냥 걱정이 많은 사람으로 보이겠지만, 오로지 자기 일만 그렇게 여기고 다른 사람들은 무심하게 보니까 관객들이 그렇게 보지 않는 것 같아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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