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터뷰] ‘온 더 비트’ 윤나무, 순간마다 살아 숨 쉬는 아드리앙의 리듬과 세계

임가을 기자 / 기사승인 : 2025-09-23 08:57:10

[SWTV 스포츠W 임가을 기자] ▷ 전편에서 이어집니다

※ 본 인터뷰는 작품에 대한 스포일러가 포함되어 있습니다.

 

이번 인터뷰를 통해 윤나무가 말하는 ‘온 더 비트’의 주요 장면에 대해서도 들어볼 수 있었다.

‘온 더 비트’는 수미쌍관의 구조를 갖췄다. ‘드럼이 진짜 엄청난 건요. 악기가 없어도 드럼 연주를 할 수 있다는 거예요’라는 아드리앙의 첫 대사는 그의 안타까운 결말을 알고 있는 관객에게는 또 다르게 들리는 시작점이자 끝 지점이다.

 

▲ 사진=프로젝트그룹일다


같은 이야기를 계속해서 반복하게 되는 셈인 아드리앙을 연기하는 것에 대해 윤나무는 “루프 스테이션처럼 반복되는 아드리앙의 세계가 이 아이에게는 계속해서 살아있는 것”이라며, “똑같은 얘기를 하더라도 그 순간순간 살아있는 것처럼 발화하려고 연습했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아드리앙이 절대 ‘스토리텔러’가 되지 않았으면 했다는 방향성을 덧붙이기도 했다.


“이번 연습에서 연출님과 가장 많이 이야기를 나눈 건 아드리앙이 스토리텔링을 하려고 말하는 게 아니었으면 좋겠다는 거였어요. ‘온 더 비트’는 아드리앙의 의식의 흐름이라 처음부터 끝까지 한번 이야기를 들려준다는 개념이 아니에요. 본인이 이야기하면서도 그때그때 의식 속에서 막 발견하는 힘으로 갈 수 있는 공연이죠. 무대 위 벌어지는 매 상황이 실시간이라는 생각이 들면 그 순간순간이 살아있지 않을까 생각했고, 그걸 어떻게 하면 공연 기간에 쭉 가져갈 수 있을지 고민했어요.”

그렇다면 아드리앙은 어떻게 시작과 끝이 없는 이야기를 시작하게 됐을까. 이 질문에 윤나무는 마침 마시고 있던 음료를 이용해 즉석에서 예를 들었다.

“제가 미숫가루를 먹었는데 너무 맛있어서 어떤 맛이 나는지 막 설명하는 거예요. 이게 보통 맛있지 않으면 할 수 없는 거거든요. 이것처럼 드럼이 너무 좋아서 가만히 있을 수 없고, 얘기해야 하는 아이인 것 같아요. 또 비트가 없으면 죽은 거나 다름없는 아이라 멈출 수가 없어서 계속 이야기하고 있는 것 같아요. 이 이야기를 멈추면 아드리앙에게는 생명력이 없어지고 껍데기만 남아있을 거거든요.”

비트를 발견하고 본능적으로 두드리던 아드리앙이 교본을 통해 제대로 드럼을 배우며 알게되는 개념 중 하나인 ‘고스트 노트’는 드럼에서 의도적으로 아주 낮은 강도로 연주되는 음으로, 힘을 뺀 연주 기법이지만 단순한 장식이 아니라 리듬 전체의 흐름을 매끄럽게 이어 주고 그루브감을 살린다.

 

▲ 사진=프로젝트그룹일다

 

이러한 고스트 노트는 ‘온 더 비트’의 핵심 메시지를 관통하는 요소이기도 하다. 윤나무는 “세상에는 여러 형태의 사람들이 있으니까 인간은 크기와 계급을 따질 수 없고, 그저 인간이 인간답게 자리에 존재했을 때의 가치가 있다는 걸 말하기도 하는 것 같다”며 작품 속 고스트 노트에 담긴 의미를 말했다.

“모든 소리가 뚜렷하고 선명한데, 고스트 노트는 귀에 잘 들리지 않으면서도 연주의 균형을 완벽하게 맞추고 전체를 돋보이게 하니, 꼭 필요하다는 점이 너무나 신기하면서 특별하다고 생각했을 것 같아요. 작품에 이런 대사가 나오지는 않지만, 아드리앙 본인은 스스로가 세상의 고스트 노트 같은 존재일 수도 있다고 생각했을지도 모르겠어요.”

드럼과 비트에 관해 이야기하는 동안 소리에 예민하게 반응해 감각적으로 움직이는 아드리앙의 모습이 시선을 사로잡기도 한다. 대본 안에서 아드리앙의 몸을 유추할 수 있는 정보가 아무것도 없고, 연출의 디렉팅도, 관객들에게 효과적으로 보이기 위한 계산도 한 번도 없었다고 밝힌 윤나무는 ‘온 더 비트’ 무대 위에서의 움직임에 대해 언급했다.

“그저 본능에 맡기고, 순간순간에 집중했어요. 아마 그때의 제 몸이 어떤지는 보시는 분들만 알 것 같아요. 그래서 공연이 끝나면 담이 오고 쥐가 나는 걸지도 모르겠네요. (웃음) 아드리앙은 소리에 대한 강박도 있어서 그런 것들이 구현되려면 촉이나 날이 서 있어야 되는 것 같아요.”

‘온 더 비트’는 1인극이지만, 아드리앙의 주변에는 수많은 사람이 있다. 윤나무가 표현하는 여러 인물 중 ‘세실’은 가정폭력, 학교폭력에 노출되어 있는 아드리앙의 각박한 세상 속 따뜻한 손길을 건네주는 인물로 단순히 연애 감정을 가진 것을 넘어 음악이라는 또 다른 세계를 경험케 하는 길잡이와 같이 그려지기도 한다.

 

▲ 사진=프로젝트그룹일다


아드리앙이 바라보는 세실에 대해 윤나무는 “되게 고마운 존재라고 생각했을 거다”라며, “아드리앙이 ‘살면서 누군가 날 저런 눈으로 본 적이 한 번도 없었다’고 말하는 걸 보면 그 아이에게 다르고 넓은 세계를 알려준 캐릭터라는 생각이 든다”고 말했다.

“처음 대본을 봤을 때는 ‘싱 스트리트’ 같은 영화의 너드 남자 주인공 옆 스타일리시한 여자 배우를 생각하기도 했는데, 아드리앙에게 가장 심리적으로 편안함을 줄 수 있는 사람이라 성별이 별로 중요하지 않다는 생각이 컸어요. 아드리앙과 손을 잡고 같이 걸어가면서 길을 잘 안내해 줄 수 있는 인간상이 필요했죠. 아드리앙은 감옥 안에서도 ‘이건 세실도 알면 동의를 해 줄 텐데’라고 얘기하는데 유일하게 그의 이야기를 누구보다 잘 들어주고, 적합한 리액션을 해줬던 사람일 거라는 생각이 들어요.”

그 외에도 작고 사소하지만 아드리앙의 인생에 중요한 역할을 해 준 인물들이 따스한 정을 느끼게 만들기도 한다. 세실 이외에 기억에 남는 좋은 사람에 관해 묻자 윤나무는 할머니의 유품인 앨범들을 몰래 집 안으로 옮길 수 있게 도와준 청소부 아저씨를 꼽았다.

“굉장히 큰 역할을 해 주신 것 같아요. 기라성 같은 뮤지션들의 음악이 있는 할머니의 앨범을 만나기 전까지 아드리앙은 그저 두들기기만 했을 거거든요. 청소부 아저씨 덕에 그 뮤지션들을 알게 되고, 그들의 음악에 맞춰 두들기기 시작해서 또 다른 세계가 열린 거죠. 그분이 아드리앙을 그냥 지나가 버렸다면 너무 늦게 알았을 수도 있고, 아예 몰랐을 수도 있어요. ‘온 더 비트’가 다른 이야기가 될 수도 있었겠죠. 세실 다음으로 그 아저씨가 되게 고마워요.”

작품은 비트와 드럼을 통해 만난 환희와 행복을 그리면서도 엔딩이 희망적이지는 않다. 모든 진상이 밝혀진 충격적인 결말 이후 아드리앙의 삶을 묻자 윤나무는 “저도 참 궁금하다. 사람이다 보니 희망이 있는 쪽으로 생각하고 싶다”고 말했다.


▲ 사진=프로젝트그룹일다


그러면서도 그는 “요즘 드는 생각은 아드리앙은 드럼이 너무나 달콤하고 정말 치고 싶지만, 그게 없어도 몸을 두드리는 걸로 버티고 견뎌낼 수 있는 아이라는 게 포인트인 것 같다”고 짚으며 아드리앙이 단편적으로 안타까운 캐릭터가 아닌, 경이로운 에너지를 지닌 소년이라는 점을 주목했다.

“저라면 그렇게 못해요. 그래서 아드리앙은 제가 넘을 수 없는 어떤 벽을 가진 캐릭터 같아요. 내 인생의 전부라고 느꼈던 무언가를 끝까지 붙들고 있을 수 있는 용기와 에너지가 있다는 생각에 대단하다고 생각하죠. 짠하고 불쌍해 보일 수 있는 캐릭터이지만, 저는 경이롭고 어떻게 하면 저렇게까지 할 수 있을까 싶었어요.”

올해의 크리스마스가 100일도 남지 않은 시점, 올해 윤나무는 창작 초연 작품 ‘라이카’부터 정동극장에서 마지막 시즌을 맞은 ‘쇼맨’, 브라운관에서의 활약까지 바쁜 나날을 보내고 있다.

윤나무는 “순간순간 최선을 다해서 살고 있다. 매니저랑 우스갯소리로 2025년이 20~30년이 지났을 때 생각이 날 것 같은 한 해라고 한 적 있을 정도”라면서, “빨리 크리스마스가 왔으면 좋겠다. 눈앞에 있는 상황들이 아름답게 잘 마무리되었으면 좋겠다”는 소회를 전했다.

마지막으로 윤나무는 ‘온 더 비트’를 만나게 될 관객들에게 인사말을 전했다.

“사람으로서 아드리앙이라는 캐릭터를 만난 것에 대해 굉장히 감사하다고 생각해요. 배우로서는 관객분들이 무언가에 미쳐 있는 아이를 보면서 나에게는 저런 열정과 에너지가 있는지, 내가 뭐 하나를 몰두해서 좋아해 본 적이 있는지 스스로 질문을 던져 보실 수 있다면 뿌듯하고 보람된 일일 것 같아요. 이 아이의 이야기를 듣고 극장 밖을 나가셨을 때 눈앞에 보이는 것들이 달리 보이고, 세상을 살아가는 에너지가 충전되시길 바라는 마음입니다. 많이 보러와 주세요.”

한편 ‘온 더 비트’는 오는 10월12일까지 동국대학교 이해랑예술극장에서 공연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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